지록위마(指鹿爲馬), 권력의 횡포에 상처받은 사람들

 아침부터 난리다. 사무실이 술렁거린다. 경찰이 흥사단을 ‘범좌파단체’로 규정했다는 내용이 언론에 실렸기 때문이다. 좌파단체로 규정되었으니 어떻게 하느냐는 우려에서부터 개념없는 경찰의 분류에 문제제기하며 분통을 터트리기까지 다양한 반응이다. 그러나 공통점은 모두 이 기사를 보고 상처를 받았다는 것이다. 별로 한 일도 없는데 큰 잘못을 저지른 범죄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차분히 신문을 통해 기사를 읽었다.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중국 진(秦)나라 환관 조고가 자신의 권력을 시험하고자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칭했던 데서 유래했다. 권력자가 사슴(鹿)을 가리켜 말(馬)이라고 하면 주변 사람들도 말(馬)이라고 따라한다. 하지만 사슴은 사슴인 것이다.

 흥사단이 좌파냐 우파냐, 사슴이냐 말이냐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 글에서는 편 가르기를 하고, 자기와 다른 편을 좌파로 몰아 부치는 현 정권의 행태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자 한다.(‘좌·우’라는 이분법으로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편협할 수밖에 없지만, ‘좌파단체’ 규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세상을 ‘좌·우’ 개념을 사용한다.)

1. 좌파와 우파. 그 기준은?
 
소위 우리나라에서 ‘보수’라 불리는 집단은 순수한 보수라고 부르기 보다는 수구(守舊)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나, 편의상 보수라고 하자. 현 정권은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모두 좌파, 빨갱이로 몰아 부친다. 정부 정책에 대한 지지여부가 좌우를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가학적 냉전사고의 소산이다. 철저하게 편을 가르고 차별하는 것은 소아병적 태도다. 편 가르기 통해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세력을 고립시키겠다는 발상이다. 하지만 그러한 태도가 오히려 더 큰 큰 저항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2. 그냥 좌파도 아니고, ‘범(凡)’좌파?
 
기사를 보니 경찰이 그냥 좌파도 아니고 ‘범좌파’ 단체를 규정했다고 한다. 이는 약간의 좌파적 성향이 있는 단체, 좌파 단체들과 같은 연대조직에 가입하거나 좌파가 주최하는 행사에 참가했던 중도적인 단체들도 모두 좌파단체로 낙인찍는 방식이다. 가능한 많은 단체를 ‘좌파’라는 범주 속에 넣으려는 계산법이다. 국민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고 하는 것 같은데, 점점 더 많은 단체를 좌파로 규정하다보면 이 정권은 더욱 고립되지 않을까? 

3. 보수의, 보수에 의한, 보수를 위한 정권?
 국가는 하늘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모여서 형성한 것이다. 여기에는 좌파인 사람도 있고, 우파인 사람도 있다. 물론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한쪽 성향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니다. 좌파 국민도 우파 국민도 모두 국가를 형성하는 주체이다. 한 국가의 대통령은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지 일부 세력의 대표는 아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문제가 없으나, 공인, 그것도 공무를 집행하는 사람이 특정한 이념으로 국민을 가르고, 반대쪽에 있는 세력은 탄압하고, 자기 쪽에 있는 세력에게는 각종 혜택을 편파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4. 검증없는 무작위 분류
 
경찰청이 광우병대책위 소속단체를 모두 불법·폭력단체로 규정한 것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이번 ‘범좌파단체’ 규정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활동 취지에 공감하고 동의를 하는 것만으로도 폭력단체니 좌파단체니 하는 식으로 규정하는 것은 정말 개탄스러운 일이다. 이는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옭아매고 시민운동을 위축시키려는 의도적인 공격이다. 어디 누가 무서워서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겠는가. 어떤 권력도 그러한 권리는 없다. 

5. 모든 국민을 예비 폭도로 보고 있는 정부의 착시
 
단순 참가자나 집회 장소를 지나가는 시민들을 무조건 잡아들여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법 위에 경찰이 있다. 최근 정부과 경찰은 국민을 예비 폭도로 보고 있는 듯하다. 참으로 우려스러운 태도이다.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본이지 않는가. 주인이 주인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문제에 대해 의견을 말하고, 광장에서 공유하고자 하는 것을 폭력 행위로 보는 것은 착시다. 착시가 있는 사람은 스스로 착시를 고치려고 해야한다. 자기 시각에 세상을 맞추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불가능한 일이다. 더 이상 국민을 자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론적으로 경찰이 ‘범좌파단체’를 규정하고 이들 단체 회원들을 ‘주력 검거 대상’으로 정한 것은 성찰은 하지 않는 권력의 폭력이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궁지에 몰리는 정부의 히스테리적 발작이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그렇게 험난한 일일까? 다시한번 ‘주력 검거 대상’이 되었던 ‘범좌파단체’의 활동가로서 씁쓸한 마음으로 정권이 착시를 빨리 고치고 사물을 올바르게 보기를 촉구한다. 

덧붙여.
흥사단은 정말 좌파단체일까? 흥사단에는 진보부터 보수까지 다양한 입장을 가진 단우(회원)가 있다. 흥사단은 도산 안창호 선생이 강조했던 대공주의를 중시한다. 좌우를 아우르는 것을 지향한다. 현재는 좌와 우를 아우르는 역할은 못하고 있지만, 때로는 진보적 입장을 때로는 보수적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그래서 보수적인 단체로 인식되기도 하고, 이번처럼 드물게 진보적인 단체로 인식되기도 한다. 정치적인 사안에는 매우 신중한 입장을 취한다. 이로 인해 입장이 모호한 단체로 평가받기도 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도 고심 끝에 서울역사박물관으로 갔다. 그런 단체를 좌파로 규정하고 주력 검거 대상으로 삼는 것은 코미디가 아닐까?

* 이 글은 흥사단 공식입장이 아니라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한 것입니다.

Posted by 별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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