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를 고교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방안이 검토 중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1월 27일 역사교육 강화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면서 이와 같은 계획을 밝혔다.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해야 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적극 찬성하는 바이다. 현재는 과거의 결과물이고, 과거는 미래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는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역동적인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갈등, 아픔, 화해, 발전을 경험한 우리에게 역사의 가르침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중요하다. 특히나 주변 국가들과 심한 역사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역사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하기에 많은 시민사회단체와 국민들이 한국사 교육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것이다.

 고등학교 교과과정에서 한국사가 선택과목이 된 것은 ‘2009 개정교육과정’에서 국민공통교육과정을 중학교 3학년까지로 낮춘 것에 기인한다. 아무리 자율적인 선택권을 주기 위한 조치였다 하더라도, 국가의 정체성을 인식할 수 있는 핵심 과목인 한국사마저 선택과목으로 지정한 것은 현명치 못한 조치였다. 지금이라도 국민여론의 뜻을 반영하여 한국사를 고교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기 바란다.

 나아가 정부는 역사교육에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거나, 역사적 사실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해하도록 유도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기반을 둔 역사교육을 해야 한다. 학생들이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시각으로 한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사를 단순한 암기과목이 아닌 이해하는 과목이 되도록 해야 한다. ‘역사를 배우는 교육’이 아닌 ‘역사에서는 배우는 교육’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사의 고교 필수과목 지정을 다시한번 강조하며, 이를 계기로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기반을 둔 올바른 역사 이해교육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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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에 대한 저항, 단바망간기념관
 
얼마 전 광산 지하에 69일간 매몰되었다가 구조된 칠레 광부들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광부들에게는 극적인 인간 승리, 탁월한 리더십 등의 찬사가 이어졌다. 그들은 단숨에 세계적인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러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었던 열악한 환경과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은 ‘영웅’ 만들기에 완전히 가려졌다. 여하튼 그들은 오랫동안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영웅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강제로 조국을 떠나 일본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죽어간 광부들, 그리고 일본에서도 조국에서도 기억되지 않는 광부들이 있다. 이름도 생소한 ‘단바망간광산’의 광부들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재일조선인 광부가 당했던 차별과 박해의 역사를 알리고자 헌신한 이정호 선생과 그가 건립한 ‘단바망간기념관’, 그리로 폐관된 기념관을 재건하기 위한 한국과 일본 시민들의 움직임을 소개하고자 한다. 참고로 ‘단바’는 일본 교토 부근의 지명이고, 그곳에 있는 망간광산에서 고통과 차별을 받았던 조선인 광부들의 삶을 망각에서 끌어내고자 건립한 것이 ‘단바망간기념관’이다.

왜 많은 조선인이 광산으로 끌려 갔는가

 일본의 3대 망간광산으로는 도호쿠의 하치노헤, 시코쿠의 우와지마, 그리고 단바를 꼽는다. 이중 교토 부근에 있는 단바 지역이 일본 최대의 망간 산출지이다. 망간은 생활용품으로도 사용되지만 철을 강화하는 특성 때문에 군수물자에도 많이 사용된다. 특히 독일에서는 망간을 ‘단바’라고 부를 정도로 단바의 망간의 질이 좋다고 한다.
 
제국주의 침략전쟁으로 절대적으로 군수물자가 필요했던 일본은 망간 생산량을 늘리는데 혈안이 되었다. 자료에 따르면 1944년에 필요했던 연간 망간 생산량은 300만 톤인데, 실제 채굴된 것은 35만 톤이다. 필요한 물량의 11% 밖에 생산을 못한 것이다. 이처럼 절대부족한 채굴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많은 광부가 필요했다. 그래서 위험하고 힘든 여건 속에서, 그리고 무임금에 가까운 저임금으로 일할 수 있는 있는 조선인을 강제로 연행한 것이다. 1939년부터 1945년 6월까지 강제노동을 당한 조선인은 72만 5000명인데, 이중 광산 노동자가 약 55%인 40만 명이라고 한다. 매우 많은 조선인들이 광부로 끌려가 일본의 제국주의 전쟁의 희생물이 된 것이다. 

갖은 차별과 폭력 속에서도 맨손으로 일군 기념관
 
단바망간기념관은 실제 광산 노동자로 일했던 이정호 선생이 사재를 털어 1989년에 건립했다. 그는 ‘조선인의 역사를 남기는 일이다.’ ‘망간박물관은 내 무덤이 될 것이다.’라고 하며 진폐증으로 고생하는 몸을 이끌고 직접 건립에 나섰다. 잦은 사고로 인한 죽음과 부상, 차별, 가해로 얼룩진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고, 후세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기념관이 세워진 신오타니광산과 유미야마광산은 1983년까지 채굴 작업이 진행되었던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망간광산이라고 한다.
 
이정호 선생이 1986년에 기념관 건립 공사를 시작하자, 주민들은 ‘역사의 어두운 부분’을 되살리고 ‘마을의 이미지를 나쁘게 한다’는 이유로 거세게 반대를 했다. 또한 금융권과 행정관청에서도 기념관 건립에 비협조적인 조치를 취했다. 당시 마을에 공공시설을 설립하기 위한 허가를 받거나 융자를 받기 위해서는 우선 마을 대표의 승인이 있어야 했는데, 주민대표가 기념관 건립을 반대했으니 난관의 연속이었다. 이정호 선생은 아들과 친척, 그리고 조선인 광부출신들의 도움을 얻어 그야말로 맨손이나 다름없는 조건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개척해 나갔다.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그는 일단 작게라도 시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일단 기차가 다음 역까지 갈 정도의 연료만 있으면 된다. 그 다음은 그 역에 가서 생각하자’며 주변 사람들을 설득했다. 이정호 선생은 진폐증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도 허가를 받고, 나중에는 몰래 나와 직접 광산에 들어가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결국 그는 가해의 역사를 숨기려 하는 일본 정부에 맞서, 일본에서 유일하게 일본의 가해 역사를 증언하는 기념관을 1989년 5월에 건립했다.  

개인으로서는 유지하기 어려운 기념관 운영
 
기념관 개관 첫해에는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많은 2만명이 방문을 했다. 그 후 방문객이 감소는 했지만, 20년간 총 20만명이 방문을 했다고 하니 매해 평균 1만명은 방문한 셈이다. 단바라는 외곽지역, 그리고 더 구석진 광산치고는 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찾아간 것이다. 차별과 가해의 역사를 공부하는 배움의 장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진폐증으로 앓고 있으면서도 무리를 했던 이정호 선생은 개관한지 6년이 지날 즈음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죽음을 예감한 그는 아들 이용식에게 ‘어떻게 해서든지 헤쳐 나가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념관 인근에 새로운 도로가 생기자 방문객이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그리고 인건비와 시설 유지보수 비용 증가로 인해 적자는 늘어만 갔고, 인권과 재산권을 짓밟는 ‘치안단속’이라는 폭력도 기념관 운영을 힘들게 했다. 고심 끝에 이용식은 2001년 상반기에 폐관을 결심한다. ‘인권네트’ 등 단체, 기관 등의 모금운동으로 잠시 더 운영을 하게 되었지만, 결국 재정적인 압박을 견디지 못해 2009년 5월 폐관을 하게 된다.  

한국과 일본에서 일어나는 재개관 추진운동
 
폐관 소식이 알려지자 ‘일본 땅 안에 유일한 강제징용의 역사를 증언하는 귀중한 기념관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제창하며 재일동포들과 일본인들이 나섰다. 그들은 본격적으로 2010년 6월 교토에서 ‘단바망간기념관 재건위원회’ 발족식을 갖고, 2011년 3월 재개관을 목표로 모금운동에 돌입했다. 일본 시민들의 움직임에 한국의 지구촌동포연대(KIN)가 이를 우리 사회에 알리고 대중적인 운동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한국 추진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이 제안에 흥사단, 우리민족서로돕기, 동북아평화연대, 민족문제연구소 등의 단체와 각계 인사가 응답을 했다.(11월 24일 흥사단 강당에서 ‘단바망간기념관 재건 한국추진위원회’ 발족식 및 기자회견을 개최할 예정이다.)

 추진위원회는 일차적으로 단바망간기념관의 재개관 및 지속적 운영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목표액을 모금하고 후원회원을 확보하는 일을 할 것이다. 현재 재개관을 하기 위해 필요한 긴급재원은 1천만엔인데, 이미 일본에서 4백만엔 정도가 모금되었으며 나머지 6백만엔은 11월 27일 교토에서 있을 윤도현 밴드의 자선공연과 한국추진위원회의 모금으로 충당할 예정이다. 그리고 연간 500만엔의 적자운영비는 일정기간(일본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과 한국정부 및 단체의 지원으로 기념관운영이 안정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 동안 대중적인 모금운동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그리고 모금에서 그치지 않고 재일조선인의 삶과 역사에 대한 이해 및 재외동포에 대한 인식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일을 전개할 것이다. 나아가 기념관 운영과 역사 교육에 한국과 일본의 정부·지자체가 적극 나서도록 견인할 것이다.

 뉴욕타임즈는 1989년 12월 5일 국제판에서 ‘혹독했던 기억을 남기려는 한 남자의 분투’라는 제목으로 이정호 선생을 소개했다. 망각을 재촉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몸을 던져가며 저항했던 사람, 이정호! 국치 100년이 되는 올해, 다시 망각에 저항하는 일에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기 바란다.

* 급하게 만들어서 아직 미흡하지만, 한국추진위 카페를 통해 함께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http://cafe.naver.com/tanbaman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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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사단은 10월 27일 북한 수재민을 돕기 위한 밀가루 100톤, 쌀 10톤(총 5천 5백만원 상당)을 개성을 통해 북한에 전달했다.

 이번 지원물품은 흥사단이 주최하고, 흥사단민족통일운동본부와 김제시 민주평통이 공동주관하여 9월 20일부터 10월 19일까지 ‘북한 수해동포 지원을 위한 모금운동’을 통해 마련했으며, 지원 물품은 개성시와 황해남도 배천군 수해주민에게 배포될 예정이다.

 흥사단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동포사랑 정신과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수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 동포를 돕기 위해 이번 모금활동을 거단적으로 진행했다. 흥사단 단우들은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녹이고 남북 화해와 협력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정성을 모았다.

 지원물품은 흥사단 반재철 이사장, 흥사단민족통일운동본부 류종열 공동대표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등 관계자들이 개성을 방문하여 북한 민족화해협의회와 관계자에게 전달했다. 

 현재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있지만 민간단체의 작은 정성이 물꼬가 되어 교류 활성화와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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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NGO역사포럼과 동북아역사재단이 ‘역사NGO세계대회’의 의제들을 심도 있게 다루기 위해 10월 3일부터 5일까지 캐나다 토론토에서 개최한 ‘2010 역사NGO 활동가대회’에 참가했다. 역사NGO세계대회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매년 개최해 왔는데, 대회 의제를 보다 심화시키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활동가대회를 실시했다. 이번 대회에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북미, 유럽의 역사 관련 시민단체, 학계와 현지 시민을 포함해 연인원 300여명이 참가했다.


 대회 첫날(3일)에는 ‘동아시아 역사화해를 위한 지구시민사회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삼열 에코피스아시아 이사장(한국)의 기조강연으로 시작한 심포지엄에서는 각국의 시민단체들이 동아시아 역사갈등 해결을 위해 어떠한 활동을 했는가를 살펴보고, 국가주의를 뛰어넘는 시민적 합의를 형성하기 위한 시민단체의 역할을 심도있게 논의했다.

 대회 둘째 날(4일)은 실제 역사NGO세계대회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활동가, 전문가들이 비공개적 워크숍을 열었다. 워크숍에서는 그간 세계대회에서 다뤘던 풀뿌리운동 사례, 의제와 프로그램을 검토·평가하고, 이를 토대로 2011년 대회 의제를 설정하기 위한 논의를 했다. 참가자들은 대회의 성격과 의제 설정에서부터 구체적인 프로그램 기획까지 열띤 토론을 진행함으로써 내년도 세계대회의 윤곽을 그릴 수 있었다.  필자는 나름대로 세계대회 의제를 평가하고, 몇 가지 제안을 했다.

O 평가
 
1. 전문가들에 의한 학술대회 성격이 강했음.
 2. 의제가 너무 광범위하고 다양했음.
 3. 동아시아 중심 의제에서 벗어나야할 것.
 4. ‘과제도출-실천-평가’ 프로세스가 없었음.

O 제안
 1. 일반 시민도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의제 필요.
 2. ‘네트워크 구축, 다양한 정보 공유 방안’ 마련 위한 의제 필요.
 3. 공동 연구과제를 준비하기 위한 의제 설정 필요.
 4. 참여단체 각국의 시민 관심·참여 확산위한 아이디어 제안.
 5. 청소년 교류 활성화 필요.



 대회 셋째 날(5일)은 필드워크로 진행했다. 토론토교육대학에서 진행한 ‘Facing History and Ourselves’에서는 역사교육을 통해 평화 감수성을 기르는 실습을 했고, 토론토대학 먼크연구센터가 주최한 토론회에서는 세계의 분쟁 현황과 이를 해결하기위한 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한국 참가자의 관심을 끌었던 곳은 토론토대학 동아시아도서관 방문이었다. 브리핑을 한 한국인 전문사서를 통해 캐나다에서의 한국학 연구실태와 한국학 연구자료 현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중국과 일본에 비해 매우 한국의 자료는 매우 빈약한 수준인데, 그나마 우리 정부의 지원도 거의 삭감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무엇 때문에 삭감되었을까? (*기회가 되면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소개하고 싶다)



 이 밖에 캐나다 현지 단체를 비롯한 아시아계 단체들과의 교류모임도 한국 NGO 단체들의 시야를 넓히고 네트워크를 확장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2009년에 설립된 흥사단 토론토지부에서도 많은 단우가 교류행사에 참여했다. (임요한 지부장, 정창균 부지부장, 모성원 총무를 비롯한 토론토지부 단우 10여명은 한국에서 온 단우들을 한 가족처럼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먼 이국땅에서 도산 선생을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하는 동지들과 정의돈수를 하며 뜨거운 정을 나눈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세계NGO역사포럼 창립 이래 처음으로 해외에서 진행한 사업이어서 여러 가지 어려움도 많았지만 참가자들이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현지 단체인 토론토 알파(ALPHA: 제2차 세계대전의 진상을 알리고 교육하는 민간단체)와 교민단체들의 도움으로 성과있게 모든 행사를 마칠 수 있었다.

 이번 활동가 대회를 통해 역사NGO세계대회를 종합적인 시각에서 검토하고, 의제설정을 위한 심도있는 논의를 진행함으로써 내년도 대회를 보다 의미있게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국내 역사NGO 활동가들도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경험을 함으로써 한층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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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7차 흥사단대회가 10월 23일, 24일 양일간 강원도인재개발원에서 반재철 이사장, 민병희 강원도 교육감, 박용수 전 강원대 총장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모인 단우 및 청소년 회원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이번 대회는‘대공주의(大公主義) 실천으로 화합하는 공동체’를 주제로 선정했으며, 대회 참가자들은 도산의 대공주의 정신을 살려 공익 우선과 사회 참여를 결의하였다. 



 반재철 이사장은 대회사에서 대공주의 실천을 통해 사회의 화합과 발전에 기여해 다가오는 흥사단 100주년이 우리만의 100주년이 아닌 ‘겨레와 함께 한 100년, 세계와 함께하는 100년’이 되게 하자고 밝혔다. 대회를 주관한 춘천지부 이정석 지부장은 환영사에서 도산 선생의 대공주의 사상은 가정과 사회, 우리 민족에게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대공주의'에 대한 주제로 강론을 한 박용수 전 강원대 총장은 사회통합을 위해 대공주의를 실천하자고 강조하였다.  



 
이어서 창립100주년기념사업 추진위원회 활동 보고와 대회 기부금모금(모금위원장 이창기), 프로그램 경진대회가 있었다. 총 6개 팀이 참여한 프로그램 경진대회에서는 청소년 퓨전극단 활동, 대학생 통일조직 운영, 다문화 가정을 위한 봉사, 역사문화 탐방, SNS를 활용한 운동, 새로운 조직 모델개발 등 다양한 활동이 소개되었다. 심사위원단과 참여 단우에 의한 심사에 따라 13년간 초-중-고-대학교, 시민과 학부모-단우를 연계시키면서 완성한 모델과 활동을 소개한 제주지부가 최우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둘째날에 열린 공동체 프로그램은 단우들이 함께 뛰고 호흡하면서 화합의 장, 축제의 장을 완성하였다. 끝으로 차기 개최지인 청주지부에 대회기가 전달되면서 97차 단대회는 마무리 되었다. 

 흥사단 단우들은 이번 단대회를 통해 모아진 에너지를 대공주의 실천으로 이어나가, 내년 청주에서 열리는 제98차 흥사단대회에는 더 값지고 풍성한 내용으로 만날 것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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