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바망간기념관 재개관식에 다녀와서- 

단바망간기념관 후원회원이 지난 6월 23일 기준으로 1,435명에 달했다. 당초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1천명 목표를 훌쩍 넘는 숫자다. 후원회원은 1,435명이지만, 온라인에서 지지․성원의 글을 쓴 네티즌, 신문․방송을 보고 격려를 해 준 시민․학생, 후원회원 모집을 위해 거리에 나선 학생들, 그리고 일본에 거주하는 후원자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많을 것이다. 또한 교토에서 후원금 모금을 위한 공연을 해 준 윤도현 밴드와 그 공연에 참여했던 분들도 빼 놓을 수 없다.

일본 교토시에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단바지역 산 속에 휑하니 방치되었던 망간탄광. 왜 많은 사람들은 국가와 민족을 넘어 단바망간기념관에 감동하고 하나가 되어 움직였을까? 기념관 재개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부터 이 질문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직도 어둠에 묻혀있는 역사

우키시마마루 호 침몰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 요애 카쯔히코(余江勝彦) 선생이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뒤에 보이는 동상은 침몰사건의 피해자의 넋을 기리는 ‘순난의 비’로 이 분이 직접 만들었다.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내린 방문단은 혼슈(本州)를 가로질러 마이즈루((舞鶴)시에 있는 군항으로 이동했다. 마이즈루 군항은 천연 요새로 메이지(明治) 시대부터 해군 기지로 사용되었고 지금도 일본 자위대 해군이 배치되어 있는 곳이다.

  (위) 우키시마마루 호 침몰당시 사진. 앞 부분에 보이는 구조물이 우키시마마루 호. 뒷 부분은 침략과 함께 해외로 나갔던 일본인들을 싣고 돌아오는 배의 모습이다. 우키시마마루 호는 침몰이 된 후 수 개월동안 바다에 방치되었다.
  (아래) 우키시마마루 호 침몰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 요애 카쯔히코(余江勝彦) 선생이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뒤에 보이는 동상은 침몰사건의 피해자의 넋을 기리는 ‘순난의 비’로 이 분이 직접 만들었다

우리 일행은 우키시마마루(浮島丸) 호가 침몰한 현장을 둘러보고 그 넋을 추도했다. 1945년 8월 해방의 기쁨을 간직한 채 고향으로 가기위해 우키시마마루 호에 몸을 실었던 수많은 조선인들이 원인 모를 폭발에 의해 숨진 곳이다. 6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폭발원인과 정확한 탑승 인원, 사망자 수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희생자와 유족들이 일본 법원에 배상청구를 했지만 원고 패소판결을 받았고, 일본 정부 공식사과 요청은 기각 당했다. 진상도 밝혀지지 않았고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이 이뤄지지 않은 ‘우키시마마루 호 침몰 사건’은 아직도 1945년에 머물러 있다. 진실을 밝혀내야 할 역사적 과제를 떠안고 무거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둘째 날 오전에는 도시샤(同志社) 대학에 있는 윤동주, 정지용 시비와 리츠메이칸(立命館) 대학 평화박물관을 방문했다. 우리 말을 사용하지 못했던 시기에, 아름다운 우리 언어로 민족을 노래했던 윤동주, 정지용 시인. 그들이 유학했던 도시샤 대학에 한켠에 두 시인을 기리는 시비가 있다. 윤동주 시인은 우리 말로 시를 썼다는 이유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사망했다. 왜 사망했는지는 설(說)만 무성할 뿐 진실은 가려져 있다. 어디 밝혀지지 않은 일제 치하의 만행이 이 뿐일까? 비밀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는 일본 정부가 가지고 있지만 열 생각을 안 하니, 누군가가 열어 달라고 문을 두드려야 하지 않을까?

                                    좌측이 윤동주 시인의 비, 우측이 정지용 시인의 비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단바망간기념관

고온다습한 날씨 속에 단바망간기념관에 도착했다. 일제시대 많은 조선인이 일본 교토 인근 ‘단바’지역 망간광산에 강제징용되어 가혹한 노동을 강요받았다. <단바망간기념관>은 그러한 강제징용의 역사를 보전하고자 실제 광산 노동자로 일했던 고(故) 이정호 선생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1989년에 건립했다. 이정호 선생은 “망간기념관은 내 무덤이 될 것이다. 이것은 조선인의 역사를 남기는 일이다.”라고 결의를 밝히고 죽는 날까지 기념관과 함께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일본사회는 어두운 과거를 세상에 알리는 것을 꺼려하며 갖은 방해를 했다. 설립자 이정호 선생이 광산노동으로 인한 진폐증으로 사망하자, 아들 이용식 관장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 받았다. 하지만 기념관 운영도 누적된 적자를 이기지 못해 2009년에 폐관을 하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한국과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들이 재개관을 위해 손을 걷고 나섰다.

단바망간기념관 후원회원 모집을 위해 거리로 나선 학생들. 이들의 열정적 활동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흥사단을 비롯한 국내 시민단체들이 재개관 지원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운영 지원을 위한 후원자 모집에 나섰다. 운영지원을 위해 목표로 한 금액은 월 5백만원(약 35만엔). <단바망간기념관 재건 한국추진위원회> 실행위원들은 큰 돈을 내는 소수보다는 적은 돈을 내는 다수를 모집하기로 했다. 힘든 일이지만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많은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5천원, 3천원(학생) 회원을 모집해 월 5백만원을 모으려면 1천명 이상이 필요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한국추진위원회에 참여하는 단체, 한국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조선족 동포, 고 이정호 선생의 고향인 김해의 시민들, 국회의원 등이 후원회원으로 가입했다.

이번 후원회원 모집 중 가장 큰 특징은 학생들의 힘이 컸다는 것이다. 추진위원회 산하 학생위원회 소속 친구들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종횡무진 활약했다. 이에 많은 젊은 층이 공명(共鳴)했다. 한 포털사이트에 단바망간기념관 사연을 올린 한 학생의 글에 수 만명이 조회를 하고, 수 천건의 댓글이 달리고, 수 백명이 후원회원에 가입했다. ‘세계 유일의 조선인 강제징용 현장 박물관을 살리자’, ‘차별과 가해의 역사를 잊지 말자’, ‘역사를 지킬 의인(義人)이 필요하다’는 글은 정말 거대한 파도와 같은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열정적인 청소년들 덕분에 목표로 했던 1천명을 훌쩍 뛰어넘어 후원회원이 1,435명에 달했고, 재개관 기념식 방문단은 좀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참석을 했다.

과거와 현재, 가해와 피해를 넘어선 단바망간기념관

재개관식에 앞서 광산 현장을 둘러보았다. 열악한 숙소, 가혹한 노동현장을 보고 있노라니 강제징용되었던 분들의 고통과 좌절, 슬픔과 분노가 전이되는 듯했다. 국권 상실에 이은 인권 박탈의 현장이었다. 전쟁의 광기, 정복 야욕에 무참히 짓밟힌 순수한 영혼의 절규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어둡고 차가운 광산 안에 갇혀 있는 듯 했다. 그들의 절규를 세상 밖으로 알리고 넋을 달래며, 다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후세들을 위해 풀어야 할 역사적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제징용 당시 상황을 재현해 놓은 탄광 내외부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앞서 ‘무엇이 1,435명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라는 질문을 던졌다. 행사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핵심적인 문제는 아직 일제 식민지배 범죄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데서 기인한다. 유엔 주최로 200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개최된 ‘세계인종차별철폐세계대회’에서 나온 ‘더반선언’은 ‘식민지배는 그 자체로 범죄’라고 규정하였다. 하지만 일본은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있고, 이를 후세에 교육하고 있다. 그러한 형국이니 당연히 배상과 진심이 담긴 사죄도 없다.
 
많은 분들이 ‘세습적 피해자의식’을 넘어 해결되지 않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아야겠다는 역사적 책임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바망간기념관 재건에 관심을 가진 것 같다. 또한 과거사의 올바른 해결을 통해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만들고, 나아가 동북아 평화를 정착시키고자 하는 바람도 담겨 있으리라. 단바망간기념관은 한일 간 역사적 특수성 뿐만 아니라, 인권, 평화, 차별금지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가 담겨 있는 살아있는 교육의 장이라는 특성이 있다.
 
핍박과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민족성을 지켜온 분들에 대한 존경심과 역사적 부채의식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에 학생들의 적극적인 호소와 열정적인 활동이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 것 같다.

 식민지배는 종식되었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더구나 현존하는 민족적 차별, 고통, 억압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또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외국인, 다문화가정에 대한 차별과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어떤 활동을 해야 할까? 민족주의를 넘어 보편적 세계시민으로 나아가기 위해 넘어야 할 과제들을 풀기위해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화해는 과거의 정의롭지 못했던 유산을 고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넬슨 만델라의 소중한 가르침이 크게 가슴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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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해 8월 10일 담화문을 발표했다. 일본 총리가 강제병합 100년을 맞이하여 담화문을 발표하고, 과거사를 반성한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담화문은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내용이라 매우 실망스럽다.

 강제병합 100년을 맞이하여 일본 정부의 전향적인 과거사 사죄 및 피해자에 대한 책임있는 조치가 발표되기를 기대했다. 강제병합 100년은 과거사의 상처를 성실히 치유하고 한국과 일본의 새로운 관계를 열어가기 위한 좋은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간 총리의 담화문은 이전 일본 정부의 발표보다 진일보한 측면이 있긴 하지만, 역사의 무게에 비해 너무 가볍고 구체적이지 못했다. 담화문의 내용처럼 ‘폭넓게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협력하여 지도력을 발휘하는 파트너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과거사의 완전한 치유를 통한 신뢰형성이 우선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간 총리는 담화문에서 ‘한국인들의 뜻에 반(反)하여 이뤄진 식민지 지배’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이 기대한 것은 강제병합 조약과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도덕적으로 부당했다는 ‘유효부당론’으로는 우리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한, 어느 누구도 일본의 진정성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직시하기 바란다.

 또한 간 총리는 ‘재(在)사할린 한국인 지원, 한반도 출신자의 유골반환 지원을 성실히 실시’하겠다고 했다. 이 역시 너무나 미약한 조치이다. 조선인 일본군‘위안부’, BC급 전범, 시베리아 억류자, 야스쿠니에 합사자, 관동대지진 피해자, 강제징병·징용자 등 식민지 범죄가 야기한 수많은 피해자들에 대한 철저한 사죄와 충분한 배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역사 왜곡, 재일 조선인에 대한 민족적 차별을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조선총독부를 거쳐 반출돼 일본 정부가 보관하는 조선왕실의궤 등 한반도에서 유래한 귀중한 도서’를 반환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여기서도 우리 문화재를 불법으로 약탈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반환하겠다는 문화재도 극히 한정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약탈해간 모든 문화재를 공개하고 반환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이번 간 나오토 일본 총리의 담화는 우리 국민의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잘못된 과거사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죄와 완전한 치유만이 한·일 양국이 신뢰를 형성하고 미래지향적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강조한다.

 일찍이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는 일본 관리에게 ‘원한 품은 2천만을 억지로 국민 중에 포함시키는 것보다는 우정있는 2천만을 이웃 국민으로 두는 것이 일본의 득일 것이다.’라고 갈파하였다. 일본 정부는 지금이라도 대한국민 국민과 우정있는 이웃으로 지내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전향적인 조치를 마련하여 실행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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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교육에 필요한 것은 반성과 사죄 

  일본 문부과학성이 12월 25일 고등학교 지리분야 학습지도요령 해설서 개정판에서 독도 영유권에 대한 입장을 고수했다. 뒤이어 가와바타 문부과학상도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독도가 자국의 영토로 인식시키는 것에 변함이 없다는 망언을 했다.
 
우리는 일본이 우리의 영유권에 대한 침탈 야욕을 드러낸 것에 대해 강력히 규탄한다. 또한 일본이 제국주의 망령을 버리지 않는 한 하토야마 총리의 동아시아 공동체 협력방안은 단순한 수사에 불과한 것이며, 한일 양국 간에 발전적 미래는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밝힌다. 

 12월 25일 ‘고등학교 교과서 새 학습지도요령 해설서’를 발표한 일본 문부과학성은 지리·역사 분야에 독도를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중학교에서의 학습에 입각, 우리나라(일본)가 정당히 주장하고 있는 입장에 근거해 적확하게 취급, 영토문제에 대해 이해를 심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여기서 ‘중학교 학습에 입각’ 한다는 것은 지난 2008년 7월 공표한 ‘중학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서 독도를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명시한 원칙을 고수한다는 의미이다. 더 나아가 해설서 공표이후 갖은 기자회견에서 가와바타 문부과학상은 해설서에 독도를 명기하지 않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해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인식하는 것에는 아무런 변경은 없다”고 못 박았다.

 2008년 7월 ‘중학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 공표와 2009년 4월 9일 침략전쟁을 미화한 지유샤(自由社) 중학교 역사교과서를 검정 통과한 것에 대해 비판 성명을 냈던 우리 흥사단은 일본의 우경화 흐름 속에 탄생한 하토야마 정권에 많은 기대를 해왔다. 하토야마 총리는 취임 직후부터 동아시아 공동체 협력방안을 주장해 왔고, 역사문제를 직시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이 제국주의 식민지배 망령에서 벗어나 과거사를 올바르게 청산하고, 미래 지향적인 평화공존 체제를 만들어 가는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발표와 망언을 접하며 큰 실망과 함께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이번 발표는 겉으로는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폭력을 가하는 비열한 조치이다. 하토야마 정부는 자국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일본의 야만적 식민 지배를 옹호하고, 침략 전쟁을 미화하며 한국의 주권과 영토를 침해하는 범죄 행위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2010년은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제병합 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과거의 반인륜적 행위에 대해 대오각성하고 아시아 각국에 침략 행위에 대해 진정성 있는 공식 사죄를 해야 할 일본 정부가 이와 같이 침략적 도발행위를 지속한다면 세계의 어떤 나라도 일본을 ‘정상 국가(normal state)'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인 역시 세계인들로부터 경계의 대상이 될 것이다.

 동아시아 평화와 미래지향적 동반자 관계를 바라는 우리 흥사단은 일본 정부가 즉각 중·고등학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서 독도 영유권에 대한 내용을 삭제하고, 대신 자신들이 저지른 반인륜적 범죄 행위에 대해 반성하고 사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내용을 강조해 넣을 것을 촉구한다. 반성하고 사죄하는 것이 진정 올바르고 용기있는 행위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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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곡된 역사 교과서 검정을 통과시킨 일본 문부과학성을 규탄한다
- 침략전쟁과 식민지배를 정당화한 교과서는 아시아 평화를 위협할 것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4월 9일 새역모(‘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가 지유샤(自由社)를 통해 검정신청한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검정을 통과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는 침략전쟁과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미화한 지유샤 교과서가 검정에 통과된 것은 야만의 시대로 회귀하려는 일본 정부와 극우세력의 야욕이 그대로 드러난 것으로, 아시아의 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단호히 비판받아야 한다.

 1997년에 결성된 새역모는 후쇼샤(扶桑社) 출판사를 통해 왜곡된 역사 교과서를 보급하고자 하였으나, 한국과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단체들의 운동에 부딪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채택율을 기록한 바 있다. 이후 내부 갈등으로 분열을 한 새역모가 또다시 ‘위험한 교과서’를 내놓은 것은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정하는 등 편향된 역사인식을 가진 아소 다로(麻生太郞) 정권과 무관치 않다.

 이번 새역모의 지유샤 교과서는 후쇼샤 교과서를 그대로 옮긴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유사하며 특정 부분에서는 더욱 심한 왜곡을 하였다.
 지유사 교과서에는 ‘정한론’, ‘한반도 팔뚝론’ 등을 내세워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에 대한 침략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근대화 사업’과 ‘일체화’를 부각시키며 식민지 지배를 미화 또는 은폐한 반면, ‘일본군 위안부’등 자국이 저지른 반인륜적 야만행위에 대해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더 나아가 원폭과 관동대지진으로 일본인 피해도 있었으며, 전범재판에 문제가 있었다는 등 오히려 적반하장(賊反荷杖)격 역사 기술을 하고 있다. 이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모호하게 하거나 왜곡시킴으로써 역사적 책임을 회피하고, 잘못된 역사를 정당화시키려는 위험한 발상의 소치이다.

 이번 지유샤 교과서가 천황을 크게 부각시킨 것은 이전 교과서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교과서에는 ‘소화천황의 말씀’을 칼럼으로 실으며 천황을 평화주의자로 미화시키고 전범국 책임자로서의 과오를 은폐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건국신화를 역사화 함으로써 신화중심의 미개한 역사관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일본 극우 보수세력이 지향하는 사회가 파쇼적 군국주의로의 회귀임을 드러내는 것으로 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히 우려가 된다.  

 올해는 3.1운동이 90주년이 되는 해이며, 내년은 일본이 강압적으로 조선의 국권을 강탈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하고 야만적인 행위를 자행한 역사를 참회, 사죄하고 평화로운 국제사회를 이루기 위해 각오를 새롭게 다져야 할 일본이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 시계’는 미래로 가지 않고 과거로 가고 있다. 일본 정부와 극우 세력은 왜 자국이 국제사회에서 아직도 ‘정상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지 자문해야 한다. 그리고 일본이 인권과 평화를 파괴할 위험성이 있는 ‘문제국가’ ‘위험국가’로 인식되고 있음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심각하게 왜곡된 지유샤 역사 교과서 검정 승인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검정 승인을 즉각 취소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또한 제국주의 침략 전쟁을 정당화 하고 식민 지배를 미화하는 어떠한 역사적 기술(記述)도 철회하고, 고통과 상처를 받은 피해자와 피해 국가에게 사죄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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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극우세력의 후진성과 위험성을 드러낸 이시하라의 망언
- 중국의 북한 합병 발언은 자국의 위기를 떠넘기려는 속셈
-‘정상국가’가 되지 못하는 일본, 국제사회에서 외톨이 될 것



  군국주의 시대의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인 이시하라 도지사가 또다시 망언을 했다. 이번 발언은 과거사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넘어서 주권국가의 존엄한 국권(國權)을 무시하는 것으로 매우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시하라 도지사는 지난 13일 동경도내 일본특파원협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6자회담이 북핵 문제 해결이나 북한 개방에 진전을 가져오지 못했다며 “중국이 북한을 합병하는 것이 제일 편하다”고 말했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아시아 국가를 해방시키기 위함이라는 등 왜곡된 역사관에 의해 우리 민족을 비하하는 망언을 일삼아 온 이시하라 도지사였다. 하지만 이번처럼 한 국가의 주권이 다른 나라에 종속되는 것이 좋다고 발언한 것은 일본 극우파의 야욕과 폭력성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단순히 망언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없는 사안이다.

 이러한 망언은 일본이 역사에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범하고도 아직 반성을 하지 않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경제발전으로 외적 성장은 했지만, 내적으로는 군국주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극명한 사례라 하겠다. 그래서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아직 ‘정상국가’(normal state)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시하라 뿐만 아니라 주요 정치인들이 계속해서 잘못된 역사를 정당화하고 타 국가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망언을 하는 것은 일본 정치의 후진성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에서 벗어나기가 무섭게 세계경제 악화로 어려움에 처하고, 6자 회담 등 국제무대에서 안하무인격으로 자국의 입장만 주장하다가 외톨이가 되었다. 이러한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철저한 자기반성을 하기보다는 국민의 시각을 외부로 돌리는 극우파의 뻔한 속셈이 보인다.

 한편 이러한 일본 극우파의 위험한 발언은 한반도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한반도의 긴장 관계를 바라는 일본 극우파는 북미관계 개선을 바라지 않고 있다. 북한을 적대시하며 미국을 등에 업고 지역 패권을 유지해온 일본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또한 그동안 남북관계의 개선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적 분위기가 무르익은 것도 일본으로서는 탐탐치 않았을 것이다. 불안하고 조급했을 것이다. 그래서 최근 남북관계의 경색을 호기라 생각하고 이를 고착화시키기 위한 술책으로 이시하라의 발언이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정부는 한일 관계의 패턴을 잘 읽고 대처하기 바란다. 매번 한일 정상회담이 있은 직후 일본은 뒷통수를 치는 전술을 구사해 왔다. 지난 해 정상회담 직후에 독도를 교과서 해설서에 명기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그 대표적 예이다. 정부는 바로 눈앞에 보이는 실리에 급급해 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치밀한 대일 관계 전략을 수립하기 바란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일본이 진정으로 좋은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이웃 나라를 유린하는 것은 결코 일본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파하셨다. 일본은 아직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을 직시하기 바란다. 우리는 어엿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려면 일본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뼈아픈 반성과 함께 철저한 자기성찰을 할 것을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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