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마시는 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
인스턴드 문화 속에 잃어버린 차의 맛과 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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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시절에 학위논문을 제대로 쓰지 못해 안절부절 못하던 때가 있었다. 더군다나 조교생활을 하면서 잡무에 시달려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때때로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삶은 오직 빨리 논문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목적을 위해 존재하였고, 다른 요소들은 모두 방해물이었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던 절친한 친구가 조교실로 찾아와 다짜고짜 인사동에 가서 차 한잔하러 가자며 반강제로 이끌었다. 조교 업무도 끝나지 않았던 나는 한편으로 걱정이 되면서도 한편으로 쳇바퀴 같은 삶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이 들기도 했다.

인사동 전통 찻집에 들어가 친구가 우려내는 차를 마시며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딴 세상에 온 느낌이었다. 차와 물소리가 있는 그 곳에는 논문도 조교 업무도 없었다. 친구의 잔잔한 미소와 멀리 어디론가 헤매다 집에 돌아온 듯한 편안함이 나를 감싸고돌았다.

맑은 물에 투영된 나의 모습을 보듯이 그동안 나의 삶의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차의 의미를 조금 알게 되었다. 차에는 빛깔과 향, 맛뿐만 아니라 삶을 조명해 볼 수 있는 멋과 여유가 있다는 것을…. 그 뒤로 차는 내 인생의 중요한 동반자가 되었다.

중국에서 차가 크게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춘추전국시대라고 어느 책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계속되는 전쟁과 혼란 속에 삶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인간의 본성과 세상을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차를 크게 보급시켰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현대인의 생활은 춘추전국시대 보다 더 급하게 정신없이 변해간다. 옛사람들이 차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았던 반면에, 현대인은 바쁜 삶을 위해 차를 변모 시켰다. 바로 인스턴트 차의 대량생산이다. 물론 나 자신도 커피보다는 인스턴트 차를 더 선호하기는 하지만, 그 속에는 삶을 돌이켜 볼 수 있는 멋과 여유가 없다. 좀 시간이 들지만 다기를 준비하고 차를 우려내고, 빛과 향과 맛을 음미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시간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고 삶에 정성을 담게 된다. 간단하고 빨리 마시고 돌아서는 인스턴트 차 문화 속에 진정한 차의 존재는 왜곡되고 있는 것 같다.

일상 생활 속에서 제대로 차를 음미하면서 마실 여유조차 없는 현대인의 삶은 어떠한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 아는 분이 요청해서 2002년 1월, 차(茶)와 관련된 잡지에 기고한 글. 잡지 이름은 기억이 가물가물.

Posted by 별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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