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목욕하면 날씨가 맑아진다는 금강산 향로봉


“향로봉 날씨가 워낙 변덕스러워 마을 사람들은 향로봉에 여신(女神)이 있다고들 해요. 재밌는 것은 개울에서 남자들이 옷 벗고 목욕하면 흐리던 날씨가 맑아져요. 진짜 여신이 있나 봐요. 하하!” 향로봉 국유림 보호협약 주민대표인 박광주 씨의 말에 모두가 웃었다. 이에 질세라 여성 참가자들이 한마디 거든다. “지금 날씨가 꽤 흐린데, 남자들 중에 누가 대표로 목욕 좀 해요.” 그 소리에 한바탕 웃음이 퍼졌다. 추운 날씨, 그것도 개울에는 얼음이 군데군데 보이는 곳에서 어떤 강심장이 선뜻 목욕을 한다고 나서랴.


 1년간 풀뿌리 주민운동가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진행했던, 주민아카데미 기획위원들과 찾은 향로봉은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곳이었다.

 향로봉은 금강산 봉우리 중 하나다. 금강산 1만2천봉 중 남측에 2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바로 우리가 찾은 향로봉과 인근에 있는 가칠봉이다. 향로봉은 북쪽 땅의 금강산을 바로 볼 수 있는 곳이며, 산림청의 산림유전자원보호림과 문화재청의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한국 특산 식물인 금강초롱꽃, 희귀식물인 한계령풀과 사향노루, 산양, 하늘다람쥐 등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이 다수 서식하고 있는 생태계 우수지역이다.

  

국유림보호협약 통해 자발적으로 생태계 보전

 향로봉 인근은 한국전쟁 이후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9월 26일 해제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생태계 훼손을 우려한 주민들이 관·군과 협의하여 부분 통제를 하기로 했다고 한다. 향로봉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군 검문소가 있어 신분을 확인하고 출입을 관리하고 있다.

주민들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향로봉을 자연상태로 두는 것이 가치가 있다고 인식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향로봉이 있는 인제군 서화리에는 40여명의 젊은 층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은 자녀에게 물려 줄 자연유산에 대한 애정 많다고 한다.

 지역 주민들은 산림청과 '국유림의 경영과 관리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국유림 보호협약을 체결하였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산불방지, 도벌방지, 병해충 방지 등 활동 전개하고 있다. 현재 향로봉은 보호활동을 하는 주민과 산림보호, 생태계 조사 등의 활동하는 사람이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출입이 가능하다.



야생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

 향로봉에는 800여개 식생이 존재한다고 한다. 최근에도 천연기념물인 산양, 사향노루, 열목어 등을 많이 볼 수 있다고 한다. 열목어는 찬 물에 살고 체온이 낮기 때문에, 그냥 손으로 잡으면 화상을 입는다고 한다. 열목어를 안전하게 만지려면 먼저 손을 찬물에 담가 온도를 낮춘 다음에 잡아야 한단다. 버섯·나물류도 많다고 한다.

 우리는 좁은 길은 걷고, 징검다리조차도 없는 개울을 조심스레 건너며 향로봉의 생태에 대해 배웠다. 눈에 잘 띠지 않는 동물의 배설물들에 대해 생태에 관심이 많은 참가자들은 배설물의 주인공이 누구인지에 대해 설명해 주기도 했다.

 또한 멧돼지가 배가 고파서인지 땅을 파헤친 곳이 군데군데 보였고, 진흙이 있는 곳에서는 발자국이 선면하게 보였다. 요즘 문제가 많이 되고 있는 멧돼지의 발자국을 보자 긴장이 되기도 했다.

  숲에는 죽은 나무들이 그대로 있었다. 주민대표는 죽은 나무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둔다고 했다. 그 이유는 죽은 나무에서 벌레가 생겨나는데, 이를 먹기 위해 새와 작은 동물들이 오고, 새와 작은 동물들이 많아지면 더 큰 동물들도 유인되어 생태계가 순환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북경색으로 화재 진압도 힘들어

 우리 일행은 시간이 촉박해 향로봉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중간에 하산을 해야만 했다. 내려오는 길에 이런 말도 들었다. 이곳의 젊은 주민들은 자율소방대원으로 활동하는데, 남북관계가 좋았을 때에는 DMZ 내에 화재가 발생하면 불을 끄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었다고 한다. 북에서도 이를 용인했고, 소방헬기도 동원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남북경색으로 화재가 발생해도 사람과 헬기가 들어가지 못해 피해가 크다고 했다. 남북관계 경색이 DMZ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향로봉은 산림유전자원보호림과 문화재청의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지만, 곳곳에 군 훈련소가 있었다. 이런 군 훈련소는 동물의 자연스런 이동을 방해하고 있으며, 특히 사격 훈련장은 산림을 훼손하고 있어 심히 우려된다.


DMZ은 생명과 평화를 위한 공간으로 보전해야

 90년대 후반 남북관계가 좋아지자 부동산 업자들이 군사분계선 주변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북측 지역 땅문서도 나돌았다는 소문도 있었다. 파주, 연천 지역에 불법개간 건수만도 150건이 넘는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심지어 지자체가 나서서 상업적 이용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곳도 있다. 이런 속물근성이 우리에게 남아 있는 한 한반도의 미래는 회색일 수밖에 없다.

 접경지역은 생명에 이롭게 개발해 쓰고, DMZ과 접경지역 사이인 민북지역은 연구·탐방 외에는 보존하고, DMZ은 통일이 되어도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정성헌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의 말이 무게 있게 다가온다. 분단의 아픔이 남아 있고, 아직도 긴장감이 돌고 있는 DMZ 부근은 생명의 보고이자 평화의 상징으로 후손에게 물려주기를 바란다.


Posted by 별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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