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가 있어 울산에 갔다. 1박 2일간의 행사를 마치고 잠시 시간이 남아 일행과 함께 ‘간절곶’에 가보려고 했다. 한반도에서 가장 해가 빨리 뜬다는 곳을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울산교육연수원에서 해변을 따라 간절곶까지 가려고 나섰다.

해안길을 따라 가다가 모래사장이 아닌 몽돌로 이루어진 해변이 있어서 들렀다. 다양한 색색의 돌들이 물에 부딪혀 둥그런 모양을 하고 있었다. 방문객들이 돌을 가져가는 바람에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는 몽돌해변이 많은데, 이곳은 잘 보존되어 있어서 보기가 좋았다.

간절곶으로 가는 도중에 안내하시는 선배가 대왕암이라는 곳을 먼저 둘러보면 좋겠다고 하여, 그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울산시 동구에 소재하고 있는 대왕암공원은 한반도 동남단 해안에서 동해 쪽으로 가장 뾰족하게 나온 부분에 해당한단다.


공원입구에 들어서면 다양한 나무들 사이로 산책길이 있다. 봄에는 벚꽃이 터널을 이루어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인다고 한다. 개나리, 동백도 유명하다고 하지만, 100여년 이상 된 소나무들이 시원하고 아늑하게 보인다. 꽤 더운 날씨였지만, 나무가 만들어 준 그늘 길은 선선한 기운이 감돌았다.

나무로 둘러싸인 산책길을 600여 미터 가다보면 하얀색 기둥 모양이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두 건축물은 울기등대와 울기항로표지관리소로 쌍둥이처럼 동해를 바라보고 서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9미터 높이의 울기항로표지관리소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1906)로 세워졌는데, 군사목적으로 건설되었다고 하니 일본이 러시아 함대를 관측하기 위해서 설치한 것으로 생각된다.



울기등대와 울기항로표지관리소를 지나면서부터는 오른 쪽으로 좁은 길이 이어진다. 길을 따라 2분여 걸어가면 길이 5미터의 고래 턱뼈가 아치모양으로 서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가운데에는 고래 모양의 조각이 있다. 고래의 고장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고래 턱뼈를 등 뒤로 하고 길을 걸으면 바로 바다가 보인다. 소나무와 어우러진 바다의 풍경은 낭만적이다. 여기서부터는 바위길이다. 바다를 바라보며 바위를 걷는 기분이 상쾌했다.

10여미터 되는 철재 다리를 건너고 나면 곧 펼쳐진 바다와 함께 대왕암을 접하게 된다.








신라 30대 왕인 문무왕이 승하한 후에 경주 앞 바다에 있는 대왕석에 장사를 지내자, 문무왕이 용으로 승화하여 동해를 지켰다는 문무대왕 수중릉 설화는 익히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대왕암에 대한 설화는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아 잠깐 소개한다.  

문무왕이 승하한 지 몇 년이 지나 왕비(이름은 기록을 찾아 봐도 모르겠다)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왕비도 사후에, 호국 대룡이 되어 동해를 지키고 있는 문무왕을 따라 큰 호국룡이 되어 날아올라 울산 앞 바다에 있는 큰 바위 밑으로 잠겨 용신이 되었다고 한다. 이를 후세들이 기려 대왕바위, 대왕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의 호국 불교와 민간신앙이 결합하여 생겨난 설화 같다.

이러한 설화를 통해 백성들을 통솔하고 충성심을 자아내게 했을 텐데, 정말 설화의 주인공들이 나라와 백성을 얼마나 위했을까 생각하면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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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어릴 적엔 그랬었는데…
- 잃어버린 작은 물건의 소중함

 집사람이 천식과 먼지 알레르기가 있어 빨래는 주로 내가 담당한다. 간혹 세탁을 하고 옷을 꺼내다 보면 옷에 동전을 넣고 빨아서 그런지 동전이 남아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무 생각 없이, 때로는 귀찮아하며 옆에 있는 선반 위에 올려놓는다. 어느 날 세탁기 안에서 동전을 주어 선반 위에 올려놓다가 보니 동전이 꽤나 많이 쌓여 있었다. 그 동전들은 교환가치를 잃어버린 듯 아무 쓸모 없는 물건처럼 선반에 축 늘어져 있었다. 분명히 우리들이 사용하던 동전이고, 여전히 유용한 것인데도 말이다. 그런 동전을 무심히 보다가 문득 어릴 적 생각이 낫다.

어릴 적에 나는 이사하거나 가구를 옮기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가장 큰 이유는 옷장이나 이불장 등을 옮길 때 그 밑에 숨겨져 있던 동전이며, 구슬, 딱지, 연필 등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뿐만 아니었다. 형과 동생도 그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들뜨고 긴장된 마음으로 어른들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때로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는 물건들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서 싸우기도 하고,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간혹 100원짜리 동전을 줍기라도 하는 날이면 완전히 잔칫날이 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다지 값이 나가는 물건들이 아니었다. 물건이 귀할 때였기도 했지만, 우리가 그 물건들에 집착을 했던 것은 그들에 묻어 있는 우리의 손때, 작은 추억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억이 담겨 있는 작은 물건을 되찾음으로써 행복감을 맛보았던 소박하고 소중한 기억들이다.

어느덧 아빠가 된 나는 이러한 희미해진 옛 모습을 세살 난 아들에서 발견하곤 한다. 우리는 가구 배치를 자주 하는 편인데, 가구를 옳길 때마다 아들 녀석은 정신 없이 달려들어 작은 장난감, 색연필, 딱지(옛날과는 다른 모습이지만), 언뜻 보기에는 쓰레기처럼 보이는 작은 물건 등을 줍고는 신나서 뛰어 다닌다. “아빠! 이거 태웅이 거야!”하고 소리 치는 얼굴에는 웃음꽃이 환하게 피어난다. ‘아, 나도 저렇게 작은 물건, 쓰던 물건들을 되찾으며 좋아했었는데…’하는 생각이 마음을 진동시킨다.

현재 누리고 있는 물질적인 풍요가 우리의 작은 행복감, 추억들을 밀어내 버리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작은 것들의 가치를 알고 소중히 한다면 세상은 좀더 따뜻하고 아름다워 지지 않을까. 자원낭비와 환경오염도 줄어들고 말이다.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라는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다.


* 2003년, 모 잡지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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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위기시대의 자가용 운전
지속불가능한 교통시대로 달려가는 우리의 자가용 문화


중동국가들의 석유생산 감량으로 인한 유가 상승이 전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특히 석유가 한방울도 나지 않으면서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국가 경제를 크게 위협할 정도이다. 이러한 현실을 타계하기 위한 대안은 크게 두가지로 나뉘어 진다. 첫째는 새로운 대체에너지 개발이고, 둘째는 에너지 저소비형으로 생활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은 시간과 기술, 재정이 많이 들며 능력이 있는 소수의 인재들이 할 수 있는 일인 반면, 두 번째 방법은 별다른 기술이나 재정부담이 없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으며 국민이면 모두가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이 두가지 요소가 동시에 병행되어야 하겠지만, 우리 일반인들이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있은 것은 생활 속에서 에너지 사용 습관을 바꾸는 것일 것이다.

에너지원은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석유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석유 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부문은 수송부문이다. 아래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99년도 전체 유류 소비량은 4천2백만㎘ 이상이며, 이중 수송부문이 차지하는 소비량은 3천3백만㎘에 이르러 77.1%를 차지하고 있다.

년도

구분

전체소비(A)

수송부문(B)

B/A(%)

98년도

전체

(휘발유)

39,662,528

(9,713,029)

29849331

(9,178,796)

75.3

(94.5)

99년도

전체

(휘발유)

42,445,788

(10,156,633)

32,739,303

(9,723,523)

77.1

(95.7)

 

또한 휘발유 부분만 놓고 본다면 전체 사용량의 95.7%가 수송부문이다. 한편 전체 사용량, 수송부문 사용량은 98년에 비해 늘어났으며, 수송부문이 차지하는 비율 또한 증가했다. 이처럼 수송부문은 에너지 소비의 가장 큰 요인이며, 점차 소비량이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한 가구당 자동차 보유대수는 0.8대로, 거의 한 가구당 1대의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다. 생활 속에 깊이 들어온 자동차를 우리는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을까. 단적인 예를 미국과 비교해서 살펴보자.

유가가 급증하면서 세계경제가 위축되자 미국은 비축해오던 석유를 세계시장에 풀었고 이로 인해 잠시나마 유가가 안정되었다. 미국은 자국 내에서 석유가 생산되기도 하지만 많은 량을 수입해 비축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석유가 전혀 생산 않으며 비축량은 적어, 석유수입이 중단될 경우 채 한 달도 버티지 못한다.

석유에 대한 경쟁력에 있어서 미국과 우리는 엄청난 격차를 보이고 있다. 석유가 많은 미국은 자동차 왕국이라 불릴 정도로 자동차 중심의 사회를 이루고 있다. 실제로 자동차는 그들의 삶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땅의 넓이도 우리의 40배 이상이나 된다. 즉 미국은 석유가 많고, 자동차 중심의 사회가 형성되어 있고, 땅도 넓은 나라다. 한편 미국보다 땅덩어리가 작고 상대적으로 대중교통 수단을 많이 이용하는 우리나라는 미국의 경우보다 자동차 1대당 1년간 운행하는 거리가 더 많다. 많은 독자들이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석유 한 방울도 나지 않는 우리나라의 자동차 문화이며, 에너지 낭비의 현주소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까운 거리에 있는 식당이나 쇼핑센터에 갈 때도, 자녀들을 등하교 시킬 때, 심지어 대학 내에서 강의실을 옮길 때조차도 자동차를 이용한다. 또한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서 편안히 갈 수 있는 곳도 자동차를 이용한다. 운동 삼아 가는 등산에서도 자동차를 몰고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몰고 간다. 소득이 낮은 사람도 자동차를 굴리며, 돈 있는 사람은 좀더 배기량이 큰 차로 바꾸고 있다. 세일기간에 백화점 주변이나 주말 결혼식장 주변의 도로는 주차장이 되고 만다. 차량이 너무 많이 몰려 생기는 혼잡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 즉 교통혼잡비용은 97년 한해에 무려 18조 3000억원에 이르렀다. 특히 서울에서 발생하는 교통혼잡으로 인해 낭비되는 비용은 서울 시민 1인당 30만원에 이른다. 여기에 혼잡으로 인한 시간 손실까지 생각한다면 그 비용은 더욱 증대될 것이다.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르면 소비자 물가는 0.17% 증가하고, 경제성장률은 0.1% 하락하며, 무지수지는 10억달러나 손해를 볼 정도로 우리나라는 에너지 대처 능력이 취약한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는 상황임을 인식해야 한다. 경제가 낭떠러지로 떨어지려고 하는 순간에서도 스스로 꿈꾸는 세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IMF 위기 때 그처럼 긴장하고 아끼던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자동차를 움직이는 것은 에너지원은 석유다. 이 석유는 자동차를 움직이는 힘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오염물질을 배출한다. 이 오염물질은 대기 중에 쌓여 호흡기 장애나 피부질환을 유발한다.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산출하고 이를 유가에 반영해야 하듯이, 운전자 역시 사회적 책임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 배출가스를 유발하는 운전자 자신은 오히려 차안에 있음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대기오염에 따른 피해를 덜 받지만, 보행자 특히 교통약자는 그 피해에 직접 노출된다. 매년 대도시에서 폐질환을 앓는 어린이나 노인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급격한 자동차 증가로 인해 그토록 맑고 아름다웠던 우리네 하늘이 오염물질로 도색 되어 버렸다. 서울의 경우 전체 대기오염 중 85% 이상이 자동차의 배출가스에 기인한다. 많은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깨끗한 자연을 파괴한 책임은 어디에 있겠는가. 운전자의 사적재산 사용은 누구도 억제할 수 없지만, 그것으로 인한 피해가 사회 전체에 걸쳐 심각해져 가는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책임의식은 바로 그 나라의 삶의 질에 직결된다.

고(故)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마지막 연인이었던 도디 파예드의 아버지는 유럽에서도 손에 꼽히는 재산가인데, 그가 소유하고 있는 영국 제일의 백화점인 해로즈 백화점에는 주차장이 전혀 없다고 한다. 이 백화점뿐만 아니라 유럽의 많은 백화점, 대형 건물들이 주차장을 없애거나 줄이고 있는데, 이는 자가용 운전자들의 진입으로 인한 교통혼잡을 막기 위해서이다. 조그만 땅 덩어리에 주차장을 넓히거나 외부에 보조 주차건물까지 만드는 우리의 현실과는 대조적이다. 어느 쪽이 삶의 질이 더 높겠는가. 짧은 시각으로 보면 주차장이 넓은 쪽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는 오산이다. 더 많은 교통량을 유발시키는 주차장 확대는 주변의 교통 혼잡을 가중시키는데, 이는 결국 백화점을 찾는 운전자 고객을 도로 위에서 석유를 허공에 날려보내며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만든다. 반면, 자가용 이용은 할 수 없지만 무거운 물건을 배달해 주는 제도가 발달하고 주변 환경이 쾌적한 백화점은 고객뿐만 아니라 도시민 전체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잘 이루어지고 있지 않지만 10부제운행, 대중교통이용자 보조금 지급, 카풀, 주차장 유료제, 시차 출근제 등 교통량을 감축시키기 위한 방법들은 에너지를 절약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더욱 쾌적하게 만드는데 기여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제도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운전자들의 인식 전환이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반드시 자가용을 이용해야 하는 운전자는 공회전 억제, 급출발․급가속 금지, 적정 타이어 공기압 유지, 차계부 쓰기 등 경제 운전법을 충분히 숙지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자꾸만 늘어가는 자가용 이용의 증가가 달려가고 있는 곳은 더 이상 사람과 자연이 살아 갈 수 없는 지속불가능한 미래라는 것을 잊지 말자.

* 2000년인가 2001년에 쓴 글인데, 지금의 상황에도 적합 글이라 생각되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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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를 놀이방에 보낸 첫날
(2002년 7월 15일 오전 10시 20분)

 

태웅이는 지금쯤 놀이방에서 열심히 놀고 있겠지? 혹시 울고 있는 것을 아닐까?

때때로 짜증을 내며 울곤 하지만, 항상 밝게 웃고 재미있게 노는 태웅이는 놀이방에서도 잘 지내리라 생각한다.

작년 6월달 이후로 태웅이는 외할머니께서 보살펴 주셨어. 외할머니의 따스한 보살핌으로 태웅이는 무럭무럭, 씩씩하게 잘 자라주었어. 그렇게 보낸 지가 벌써 1년이 지났어. 한 10일전에 태웅이는 서울 생활을 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오늘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거야. 인생을 살면서 기록할 만한 날이라 생각되어 아빠가 대신 몇자 적는다.

 

오늘 아빠는 아침 6시 30분경에 태웅이가 장난치는 소리에 깨어났어. 태웅이는 벌써 엄마랑 아침 밥을 먹고 나서, 놀이방을 가는 날이라는 것을 아는 듯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놀고 있었다. 아빠가 씻고 아침 밥을 먹는 동안 엄마는 태웅이를 목욕을 시켜주었어. 깨끗하고 깔끔한 태웅이의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엄마는 출근시간이 늦도록 태웅이를 씻기고 예쁜 옷을 입히고 하느라 정신이 없으셨어. 엄마가 7시 30분경에 출근을 하자 태웅이는 엄마랑 떨어지는 것이 싫어서인지 엄마를 따라 나가겠다고 자꾸만 신발을 가리키며 밖으로 나가자고 아빠에게 우는 소리로 부탁을 하는 듯 했어. 하지만 아빠는 태웅이가 놀이방 갈 준비를 빨리 해야 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고. 이때부터 태웅이는 계속 보채기 시작했어. 태웅이는 계속 아빠를 졸졸졸 쫓아다니며 억지로(?) 슬픈 표정을 지으며 계속 보챘고. 한동안 이렇게 아빠랑 실랑이를 벌이다가 8시 15분이 되어서 집을 나서게 되었지. 태웅이가 먹을 우유, 빵, 치즈, 물, 우유병, 컵을 챙기고, 갈아입을 옷, 손수건을 쇼핑백에다 넣은 다음, 양말을 신겼지. 양말을 신긴 다음부터는 태웅이의 표정이 밝아지더라. 신발을 신고 나서는 태웅의 특유의 웃음소리-키득키득-를 내며 신나 하는 거야. 집 밖으로 나가서 몇 미터 걷더니 안아달라고 해서, 한 손에는 쇼핑백을 한 손에는 태웅이를 안고 걷기 시작했어. 이상하게 다른 사람이랑 다닐 때는 잘 걸어 다니면서 아빠랑 다닐 때는 왜 자꾸 안아달라고 하지는 모르겠어. 왜 그러는 것일까?

집에서 놀이방까지는 걸어서 2-3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놀이방이 있는 건물 1층에 있는 가게에 가서 태웅이 귀저기를 사고 2층에 있는 놀이방으로 갔어. 문을 열고 놀이방으로 들어가니 태웅이보다 1살 정도 많은 아이가 달려나와 호기심 어린 눈으로 태웅이를 쳐다보더라. 그 녀석이 태웅이게게 잘 해 주기를 속으로 부탁하면서 태웅이 신발을 벗기고 방으로 들어갔어. 그때 원장 선생님이 나오셔서 ‘야, 우리 태웅이 일찍 왔네’ 하시면서 태웅을 안아 주시더라. 처음에 태웅이는 아빠를 쳐다보면 아빠에게 오려는 듯 손을 내밀어 뭐라고 이야기를 했어. 선생님이 태웅이를 내려놓자 아빠에게 착 달아 붙더군. 선생님에게 태웅이가 심하게 울거나 보채면 연락하라고 이야기를 하고, 아빠는 태웅이 눈치를 보면서 바닥에 계속 앉아 있는 척을 했어. 선생님이 놀이기구가 있는 방으로 태웅이를 안고 가자 태웅이는 좋아서 발을 동동 구르며 키득키득 기렸지. 이때 아빠는 놀이방으로 나와 집으로 왔어.

집에 와서 집안 정리하고 차 한잔 마시고, 태웅이가 잘 놀고 있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엄마, 할머니한테서 전화가 왔어. 태웅이 놀이방에 잘 갔느냐고. 엄마가 놀이방 선생님께 전화를 하고 다시 아빠에게 전화를 해서, 태웅이가 잘 놀고 있다고 말해 주었어. 아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외할아버지께 이 소식을 전화를 알려 주었어.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태웅이를 사랑하고 걱정하고 잘 되기를 바라고 있어.

이러한 좋은 환경 속에서 태웅이가 씩씩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는 바란다.

 

이 부분은 태웅이가 고등학교를 갈 정도 나이가 되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개체발생은 개통발생을 반복한다는 말이 있어. 즉 사람의 경우, 인류가 처음 생겨나서 지금까지 진화해 오는 과정(개통발생)을 한 인간이 태어나서 그대로 재현(개체발생)한다는 것이지. 인류가 처음 생겨났을 때의 모습은 한 인간이 태어났을 때의 모습과 같고, 인류가 기어 다니다가 걸어 다니기 시작하고(호모 에렉투스), 도구를 사용하면서 생각을 발전 시켜나가는(호모 사피엔스) 과정은 한 인간이 태어나서 어른이 되는 과정과 유사하다는 것이야. 인류는 짧은 시간에 엄청난 변화(일반적으로 발전이라는 말로 표현되는)를 겪어 왔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역사의 발전, 승리인 듯 이야기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인간은 자신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바쁘게 어디론가 향해 경쟁을 하며 달려가게 되었지. 인간성을 상실함과 동시에 각종 차별, 소외가 생겨나고 특히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지구 환경은 물론, 인간 자신의 생명까지 위협하게 되는 상황을 만들게 되었어. 그래도 사람들은 지금까지 변화해온 속도보다 더 빨리 변화하기 위해 어디론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어. 갓 태어난 아기는 한 가정에서 오랫동안 인류가 원시생활을 해오던 것처럼 가정(1차 집단)이라는 이해관계가 없는 울타리에서 조건 없는 사랑을 받으며 자라야 하는데, 현대인들은 빨리 빨리 달려가기 위해 어린 아이를 사회기관(놀이방, 유아원, 유치원)으로 보내지. 물론 집에서 지내는 것보다 체계적으로 많은 것을 배우며 사회(2차집단)에 적응을 하게 되는 장점은 있겠지. 하지만 조건이 허락된다면 아빠는 오랜 기간의 원시생활처럼 태웅이도 사회체제에 편입되지 않고 태웅이 만의, 또는 우리 가족만의 테두리에서 서로의 사랑을 만들어가고, 개성을 형성해나가는 시간을 오랫동안 가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어. 하지만 아빠와 엄마도 사회에서 생활을 하는 사람이고,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이 우리에게도 크게 예외인 것은 아니어서 태웅이도 놀이방에 가게 된 거야.

 

야∼ 태웅이가 놀이방에 가는 것 가지고 너무 심각하게 글을 쓴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어쩌면 집에서 아빠랑 엄마랑 있는 것보다 놀이방에 가서 비슷한 또래들이랑 노는 것을 태웅이가 더 좋아 할 수도, 태웅이 에게 더 많은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우리는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야 할 운명을 타고 태어났으니까 항상 재미있게 생각하고 살아가자꾸나. 아빠랑 엄마는 집에서 태웅이랑 보내는 시간에 더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할께.

오늘 첫날이라서 아빠가 2시 정도에 데리러 갈 거야.(적응이 되면 오후 7시 30분까지 놀이방에서 놀아도 돼) 그때까지 너의 첫 사회생활을 마음껏 즐기고 있으려무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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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오후 1시 30분) 놀이방 선생님이 집으로 전화를 하셨다. 태웅이가 형아들(놀이방에서 태웅이가 가장 어리다)을 쫓아다니며 신나고 놀았으며, 밥도 잘먹고 우유도 잘먹고, 지금은 막 잠이 들었다고 한다. 너의 모습이 눈에 선하구나. 지금은 무슨 꿈을 꾸며 자고 있을까. 정말 다행이다. 우리 태웅이는 너무너무 좋은 아이야. 엄마도 할머니도 이 소식을 듣고 태웅이가 너무 대견하다며 좋아하셨어. 태웅이는 우리 가족에게 기쁨을 주는 아이야. 너무 고맙다. 태웅이가 잠에서 깨면 선생님이 연락을 준다고 했어. 조금 있다가 만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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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에게 처음으로 매를 든 날
(2002.8.19)

매를 든다고 해서 왜 드는지 모를 너에게 매를 들었다.

오늘 오후에 유난히 말썽을 심하게 부리더구나. 서랍을 열고 안에 있는 물건 꺼내서 다 흩트려 놓고, 다시 정리하는 사이 다른 서랍을 열어서 또 어지럽혀 놓고…. 때로는 싱크대를 열어 위험하게도 칼에 손을 대기도 하고, 식용유를 엎어뜨리기도 하고…. 늘상 태웅이가 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너무 정신이 없고 한편으로는 위험에서 여러 차례 말리다 못해 매를 들었다. 엄하게 몇 마디 혼내고는 종아리를 한대 때렸다. 한참 신나게 놀다가 한 대 맞은 태웅이는 서럽게 울기 시작하더구나. 내 생각에도 조금 세게 때린 것 같아. 저녁에 잘 때 보니 회초리를 맞은 자리가 발갛게 부어 올랐더구나.
(그래도 태웅이는 뒤끝은 없는 것 같다. 잠깐 울더니 다시 고개를 약간 옆으로 누이고 아빠를 빤히 쳐다보며 하얀 이를 들어내고 눈을 찡긋거리며 특유의 맑은 미소를 짓는게 아닌가. 너무 미안하고 예뻐서 꼬옥 껴안아 주었더니, 오히려 아빠의 어깨를 다독거려 주더라고. 세상에 이런 천사를 때리다니…)

엄마랑 같이 작은 태웅이의 종아리를 보면서 다시는 매를 들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했다. 최소한 자신이 어떠한 행동을 했는지 자각하고, 왜 맞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는 절대로 매를 들지 않겠다고. 물론 나이가 시간과 함께 흘러가더라도 가급적-이처럼 좀 모호한 표현을 쓰는 것은 아직 판단이 제대로 서있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매는 들지 않아야겠지.

아빠도 아빠의 아빠, 엄마(태웅이의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매 맞은 적이 있다. 그리 많지는 않지만. 매를 맞기 전에 아빠는, 물론 대부분의 아이들도 그렇겠지만, 내가 어떠한 잘못을 했는지 알았고,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을 하게 된단다. 그리고 매 맞기 전에 느끼는 무서움은 맞아서 아픈 것 보다 더 두려운 무엇이었던 것 같다. 때로는 진정 잘못인지 알면서, 때로는 잘못인지 모르면서, 때로는 관심을 끌기 위해서 했던 행동들에 대해 할아버지, 할머니는 혼내기도 하고, 모른 척 하시기도 하고, 잘 타이르시거나 오히려 더 따뜻하게 대해주시기도 한 기억이 떠오른다. 나의 성장에 어떠한 대응이 도움이 되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된다.

절대로 아빠가 아빠의 감정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에 대한 모자람을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해 혼내거나 매를 드는 일은 없도록 노력하마. 나도 인간인 지라 확답은 못하고 그저 노력에 노력을 하는 수 밖에….

잘자거라 태웅아, 꿈속에서 절대 매 맞는 꿈을 꾸지 않길 바라며.

* 태웅이가 갓 6개월이 지났을 때 쓴 일기.

Posted by 별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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