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처음으로 매를 든 날
(2002.8.19)

매를 든다고 해서 왜 드는지 모를 너에게 매를 들었다.

오늘 오후에 유난히 말썽을 심하게 부리더구나. 서랍을 열고 안에 있는 물건 꺼내서 다 흩트려 놓고, 다시 정리하는 사이 다른 서랍을 열어서 또 어지럽혀 놓고…. 때로는 싱크대를 열어 위험하게도 칼에 손을 대기도 하고, 식용유를 엎어뜨리기도 하고…. 늘상 태웅이가 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너무 정신이 없고 한편으로는 위험에서 여러 차례 말리다 못해 매를 들었다. 엄하게 몇 마디 혼내고는 종아리를 한대 때렸다. 한참 신나게 놀다가 한 대 맞은 태웅이는 서럽게 울기 시작하더구나. 내 생각에도 조금 세게 때린 것 같아. 저녁에 잘 때 보니 회초리를 맞은 자리가 발갛게 부어 올랐더구나.
(그래도 태웅이는 뒤끝은 없는 것 같다. 잠깐 울더니 다시 고개를 약간 옆으로 누이고 아빠를 빤히 쳐다보며 하얀 이를 들어내고 눈을 찡긋거리며 특유의 맑은 미소를 짓는게 아닌가. 너무 미안하고 예뻐서 꼬옥 껴안아 주었더니, 오히려 아빠의 어깨를 다독거려 주더라고. 세상에 이런 천사를 때리다니…)

엄마랑 같이 작은 태웅이의 종아리를 보면서 다시는 매를 들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했다. 최소한 자신이 어떠한 행동을 했는지 자각하고, 왜 맞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는 절대로 매를 들지 않겠다고. 물론 나이가 시간과 함께 흘러가더라도 가급적-이처럼 좀 모호한 표현을 쓰는 것은 아직 판단이 제대로 서있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매는 들지 않아야겠지.

아빠도 아빠의 아빠, 엄마(태웅이의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매 맞은 적이 있다. 그리 많지는 않지만. 매를 맞기 전에 아빠는, 물론 대부분의 아이들도 그렇겠지만, 내가 어떠한 잘못을 했는지 알았고,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을 하게 된단다. 그리고 매 맞기 전에 느끼는 무서움은 맞아서 아픈 것 보다 더 두려운 무엇이었던 것 같다. 때로는 진정 잘못인지 알면서, 때로는 잘못인지 모르면서, 때로는 관심을 끌기 위해서 했던 행동들에 대해 할아버지, 할머니는 혼내기도 하고, 모른 척 하시기도 하고, 잘 타이르시거나 오히려 더 따뜻하게 대해주시기도 한 기억이 떠오른다. 나의 성장에 어떠한 대응이 도움이 되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된다.

절대로 아빠가 아빠의 감정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에 대한 모자람을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해 혼내거나 매를 드는 일은 없도록 노력하마. 나도 인간인 지라 확답은 못하고 그저 노력에 노력을 하는 수 밖에….

잘자거라 태웅아, 꿈속에서 절대 매 맞는 꿈을 꾸지 않길 바라며.

* 태웅이가 갓 6개월이 지났을 때 쓴 일기.

Posted by 별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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