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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08 이승만에 맞서 친일청산, 평화통일 주장하다 사형당한 최능진 (2)

진실과화해위원회, 진상규명 발표로 명예회복
해방정국에서 흥사단의 정통성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생각게 해

얼마전 최능익 애국지사를 소개하는 글(“전투 비행기를 타고 조국의 해방 을 찾고자 했던 최능익 단우”)을 쓴 직후, 신문에 눈길을 끄는 기사가 실

렸다. 당시 글에서도 소개했던 최능익의 동생 최능진에 대한 기사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최능진의 국방경비법 위반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결정문을 발표했다는 내용이다.(9월 4일) 진실화해위는 이승만 정권에 맞서다 사형선고를 받고 총살당한 최능진 사건은 “설치 근거도 없고 법관의 자격도 없으며 재판 관할권도 없는 재판부에 의해 사실관계가 오인된 판결로 총살”된 것으로, 유가족에 대한 국가의 사과와 법원의 재심 수용 등을 권고했다. 이로서 친일경찰을 청산하고, 이승만 정권에 맞서다 조작된 사건으로 억울하게 사형당한 최능진의 명예가 회복되었다.

흥사단 활동 통해 민족주의, 계몽주의 형성

최능진은 1899년 평남 강서군 반석면에서 태어났다. 앞서 소개한 셋째 형 최능익을 비롯해 장남 최능찬, 차남 최능현 모두 독립 운동에 앞장섰다. 그야말로 독립운동가 집안이었다. 최능찬은 평남 사천에서 일어난 3·1운동 주모자로 몰려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으며 결국 고문 후유증으로 숨을 거두었고, 최능현은 윤봉길 의사와 함께 폭탄 제조 실험을 하다 폭발 사고로 숨졌다.

 최능진을 제외하고 다른 형제 모두 국가 서훈을 받았다. 그가 서훈을 받지 못한 이유는 이적죄 등으로 처형된 경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진실화해위의 결정과 그의 독립운동에 대한 경력을 보았을 때 최능진의 독립운동가 서훈도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평양숭실학교와 중국 남경 금릉대학에서 학업을 마친 최능진은 형 최능익이 미국으로 건너간 1년 뒤인 1917년에 유학길에 오른다. 그는 스프링필드 대학과 듀크 대학원을 마친 후에 잠시 워싱턴 YMCA 체육담당 간사로 일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먼저 흥사단에 입단한 형 최능익의 권유로 도산 안창호 선생을 만나고 나서 입단한다. 동우회 사건에 대한 일본 재판부의 판결문에 따르면 “대정 6년 8월 말경 미국 샌프란시스코 황사선(黃思宣) 집에서 형인 최능익(崔能益)의 권유로 흥사단이 궁극적으로 조선의 독립을 목적으로 조직된 결사임을 알면서도 이에 가입하였다.”라고 되어있다. 단우 이력서에 따르면 1918년(‘건국기원 4251년’) 12월 27일에 입단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 후 새크라멘토, 시카고, 뉴욕 등에서 흥사단 활동을 하면서 계몽주의, 민족주의 사상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활동과 사상 때문인지 그는 이승만이 외교로 독립이 가능하다는 주장에 반대 입장을 견지했다. 또한 이승만이 독립운동 진영 내에서 파벌주의와 분열주의를 조장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비판을 했다고 한다.


10여년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1929년에 귀국한 그는 평양 숭실전문학교에서 5년간 후학을 양성하는데 힘을 쏟는 한편, <동광> 등에 정신 계몽을 위한 다양한 글을 기고하였다. 그러다 중일전쟁이 일어난 1937년, 소위 동우회 사건으로 피체되어 2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흥사단의 국내조직이라 할 수 있는 동우회는 이 사건을 계기로 활동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181명의 동우회 회원들이 치안유지법 위반이라는 혐의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고, 이 과정에서 일부는 친일로 전향하는 등 큰 혼란을 겪게 된다.

<동광 23호(1931.7)에 실린 최능진의 사설>


경찰에 입문했으나, 조병옥에 의해 권고사직

조국이 해방되자 최능진은 건국준비위원회(이하 건준) 평남지부 치안부장을 맡아 해방정국 치안유지와 일제 경찰의 무장해제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이후 소련군이 평양에 진주하고 건준이 해체되자, 그는 서울로 내려온다. 서울에 온 그는 일제시대에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했던 자들이 경찰의 요직에 있는 것을 보고 분개하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경찰에 입문한다. 그는 1945년 경찰관강습소를 창설하여 경찰관을 단기 양성하는 책임자가 되고, 이어 경무부 수사국장이 된다. 그는 강력하게 친일 경찰 청산을 주장하였지만, 친일부역자 처리에 온건한 입장을 보였던 경무부장 조병옥과 갈등을 빚게 되었고, 결국 1946년에 권고사직을 받게 된다.

같은 흥사단 단우였던 조병옥이 경찰의 ‘협화를 유지하고 경찰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최능진을 권고 사직케 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흥사단에는 다양한 방식의 독립운동 전술에 존재했으며, 해방 정국에서도 많은 단우들이 다양한 사상과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활동했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동지를 제거한 일화를 접하면서, 인간사의 보편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도산 선생의 가르침에 따라 제대로 대공정신을 발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최능진이 이승만, 조병옥 등에게 ‘조국 재건에 정적이 있을 수 없다’는 서신을 보내 화해를 모색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도산처럼 전체를 아우르려 했던 인사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은 우리 역사의 아픔이다.

남북통일을 주장하며 이승만에 맞서

최능진은 경찰에서 물러난 뒤로는 정치일선에 나서게 되는데, 특히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 주장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게 된다. 1948년 5월 10일,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실시하게 되자 최능진은 ‘남북통일을 하랴거든! 동족상잔을 피하랴거든!’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이승만이 출마한 동대문 갑구에 출사표를 던진다. 동대문 갑구는 이승만의 단독출마로 무투표 당선이 예상되던 곳이었다.


회고록 등 여러 자료에 따르면 최능진에 대한 지지도는 이승만을 상회했거나, 위협하는 수준이었던 것 같다. 그로 인해 이승만 계열의 방해공작으로 후보 추천서를 날치기 당하는 등 후보등록부터 시련을 겪다가 결국 후보등록이 무효화 처리되기에 이른다.

독립운동 당시부터 이승만과 대립하던 최능진은 결국 이승만 정권이 출범한 직후인 1948년 10월 1일 ‘내란음모죄’라는 명목으로 체포된다. 독립운동가 출신인 서세충, 오동기 등과 국방경비대가 반란을 일으키도록 선동해 정부를 전복하려는 음모를 했다는 혐의였다. 종로경찰서에서 서대문형무소로 이송된 최능진은 설상가상으로 10월 19일 발생한 여순사건의 배후 조정자로 지목되면서 5년형을 선고 받게 된다.                                                       

<1948년 제헌의회 선거에 이승만과 같은 동대문 갑 지역구에 출마한 최능진의 선거 포스터(출처:독립기념관)>

6.25전쟁 와중에 출소한 최능진은 김구, 김규식 등과 교류하면서 즉각적인 전쟁 중지와 UN을 통한 평화통일을 주장한다. 하지만 다시 내란혐의로 구속되어 군사법정에서 ‘이적죄’로 사형을 선고 받고, 1951년 2월 11일 총살형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의 나이 52세였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정치사상은 혈족인 민족을 초월해 있을 수 없다’,‘군인이 정치사상의 재판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유서를 남긴다. 그의 유서에도 불구하고 우리 근현대사에는 이러한 역사가 되풀이 되었다.

해방정국에서 흥사단의 정통성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그는 친일 청산을 위해 활동하다가 친일 행위자들의 모함으로 현직에서 물러났으며, 평화통일을 주장하다가 단독정부를 수립하려는 세력의 용공주장에 의해 숨을 거두었다. 진실화해위는 이번 결정문에서, 1954년 개정 헌법에 의해 합법화되기 전까지 법적 근거 없이 운영된 군법회의 판결에 의한 피해자들을 일괄 구제하는 특별법 제정을 제안했다. 이를 계기로 해방정국의 극렬한 이념갈등과 폭력적 정적탄압에 의해 희생당한 분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후손에게라도 피해를 보상하기를 바란다.

해방정국에서 흥사단 단우들은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활동을 했다. 그렇다면 우리 후세대는 무엇을 정통으로 삼아야 할 것인가? 이는 단에서 중심적 역할을 한 분들의 위치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도산의 사상과 정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만약 도산이 생존했다면 당시 어떠한 노선을 걸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완전한 독립과 분열없는 대공정신을 강조한 도산이라면 친일 청산과 분열없는 평화통일을 주창했을 것이다. 마치 최능진 단우가 그랬던 것처럼.

Posted by 별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