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에 대한 맹목적 짝사랑이 어떤 파국을 불러올 지 걱정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이하 흥민통)는 창립 12주년을 맞이하여 3월 7일, 흥사단 강당에서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문정인 연세대 교수가 초빙되어 ‘다보스에서 본 세계, 그리고 한반도’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문정인 교수는 이번 다포스 포럼은 전체적으로 침체된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기조 연설에서 전세계적으로 2억7천만명의 실업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침울한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퍼졌다고 한다.

 이는 고용가능 인구의 7%에 달하는 것으로 세계2차 대전이후 최악의 수준이다. 재작년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으로 인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그렇게까지 침체된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이번에는 장기적인 불황이 예상되고 뚜렷한 해결방안이 없다는 데서 기인한 것 같다.

  문 교수는 다보스 포럼의 기본 원칙인 관용과 합의 원칙도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이스라엘 대통령과 터기 수상과의 팔레스타인 침공에 대한 언쟁,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책임 떠넘기기 비판 등 갈등과 반목이 도처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이어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영미 중심의 시장경제에 대한 평가와 전망이었다고 한다. 경제, 금융, 정치권 할 것 없이 대다수의 참가자들이 영미 중심의 시장경제가 지속될 것이라는 데에 회의를 가졌다고 한다.

 시장 시스템이 무너졌으며,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장에 대한 신뢰가 상실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미식 자본주의에 대한 한계가 명확히 드러났고,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허구라는 인식이 퍼졌다. 특히 시장은 절대적이고 정부는 시장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방침은 더 이상 무의한 것이 되어 버렸다.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에 대다수 참가자들이 공감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성장 중심 사고에서 나온 개념인 GDP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행복지수(Happiness Index)를 사용하자는 주장이 큰 호응 얻었다고 한다. 이는 실제 서민의 삶과 동떨어진 지표로 경제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복지․평등․배분이 강조되고, 소비자와 생산자의 가치가 동등하게 포함된 지료가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번 다보스 포럼은 미국식 경제 시스템의 한계가 세계 경제의 위기를 불러왔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데에 공감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반성과 대안 모색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유독 철지난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신봉하고 따르는 우리 정부는 도대체 어떠한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믿음에 기초하고 이의 확산을 위해 작동해 왔던 다포스 포럼에서도 한계를 인정하고 반성하며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자 노력하는데 말이다. 신자유주의 전도사인 미국에서 조차도 주요 금융기관을 국유화하려고 하고, 서민을 위한 재정 지출을 늘리고 있지 않는가? 대기업 중심의 수출확대를 위해 고환율 정책을 쓰고, 감세를 하고나서 엄청난 추경을 편성하고, 서민경제와 상관없는 엉뚱한 곳에 막대한 지출을 하는 식으로는 우리 경제는 살아나기 힘들 것이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우리 정부의 맹목적 짝사랑이 어떠한 파장을 불러 올지 걱정이다.

Posted by 별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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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
- 신자유주의 현실체제에 대한 분석과 대안 모색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에서 주로 신자유의주의 폐해와 분단체제의 모순을 분석했

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이하 새사연)은 그 후속 작업 성격의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이라는 책에서 좀더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았다. 실상 신자유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는 앞의 책과 유사한 측면이 있으나, 대안으로써 기존의 운동세력이 지능 노동자, 농민, 대학생, 자영업인 등과 연대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제시했다는 점에서는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책의 저자들은 87년 체제가 97년 외환위기 이후 껍데기만 남아 있다고 진단하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일차적 과제는 ‘87년 체제의 질적 발전’이 아니라 ‘97년 체제의 혁파’에 있다”고 강조한다. 많은 정치, 사회학자들이 탄핵반대 국면이나 촛불정국을 87년 체제의 종언이라고 평가하는 것과 사뭇 상이하다. 87년 체제가 형식적 민주주의의 달성하였으나, 97년 외환위기로 경제민주주의가 침식당했으며 이 경제체제가 정치영역까지 잠식했기 때문에 탄핵이나 촛불 정국에서 87년 체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논지이다.

저자들은 87년 당시의 계급구성은 97년 외환위기 이후 큰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이 기초 위에서 새로운 운동의 동력과 주체를 고민해야 한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21세기 사회운동은 기존의 비판적인 저항주체 못지않게 “전망과 대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 창의적인 지혜를 모으는 대안적 주체들”의 강한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새사연은 첨예하게 분화된 현실 사회를 인식해서인지 “획일적 연대는 어려워 졌지만 폭넓은 연대가 불가능해진 것은 아니다”라고 진단한다. 그래서 저자들은 다양한 대안 주체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을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그 속에 공통적으로 신자유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주도면밀하게 분석한다. 그리고 나서 이 거대한 신자유주의 ‘골리앗’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흩어져 있는 ‘다윗’들의 연대뿐이라는 프로세스로 논리를 전개하다.

 

‘제1장 근본부터 달라진 한국경제’에서는 우리 경제의 주인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외국 금융주주자본으로 재편되었고, 그 하위에 재벌 그룹과 은행, 민영화된 기관이 포진하게 되었다고 분석한다. 이에 저자는 “시장주의적 산업정책과 국가주의적 산업정책을 넘어서 대다수 경제 주체가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노동주동형 산업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한다. 즉 경제민주화가 진척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분석과 대안의 방향은 올바르다고 생각하지만 선언적 주장에 가깝다.

‘제2장 지식기반 경제와 노동의 진화’에서는 지식기반 경제가 신자유의주의 초과이윤을 올릴 새로운 무기로 등장했으며, 모든 학문적 지식이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면서 사실상 경제 전 영역이 지식기반 경제 영역으로 편입되었다고 분석한다. 이에 저자는 창조적 지능 노동자가 경제권력을 가져야 우리 경제에 미래가 있다고 전망하면서, “노동자의 경영 참여는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고 제시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를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는가이다. 자본은 소수의 ‘만들어진’ 지식인을 고용하고, 다른 노동자들과는 다른 대우(지위, 급여 등)를 하며 철저하게 차별화 정책을 구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제3장 대안실현의 중심 주체, 한국의 노동자’에서 기존 운동세력이 이들도 착취를 당하는 노동자임을 각인시키고 연대에 참여시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한 것은 논리적으로는 올바르다. 문제는 ‘소위 첨단산업 시대의 꽃으로 불리는 IT, 금융산업 종사자도 계급적으로 노동자’이기에 자본의 논리에 대항해 연대를 하면 새로운 대안을 형성하겠지만, 자본과 노동의 괴리만큼이나 이들과 육체 노동자의 괴리도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는 노동자가 반신자유주의 지향성을 분명히 하고, 총노동의 단결을 추진하며, 경제분야를 넘어선 정치 운동 참여와 산별노조 건설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이에 앞서 기존 운동 방식에 대한 성찰적 반성과 내부 토대 강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저자들은 ‘개방 농정과 신자유주의의 폭정’으로 거의 해체되어 버린 농촌의 복원을 위해 농민은 국민농업(환경 친화적 농업, 전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 공동체 형성 등)으로 전환하고 광범위하고 대중적 연대의 토대를 만들어야 함을 강조한다.(‘제4장 농민운동의 새로운 과제와 국민농업’) 또한 저항과 진보의 상징이었던 대학이 교육 시장의 단순한 소비자로 전락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대학생은 대중성을 바탕으로 대중조직을 건설하고 반신자유주의 공동전선에 참여해야 한다고 제시한다.(‘제5장 신자유주의 시대에 대학생으로 산다는 것’) 나아가 연대의 사각지대로 여겨졌던 자영업인들도 업종을 넘어 새로운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도시연대의 주요한 주축이 되어 대안경제의 주체, 지역운동의 주체로 나서는 것이 절실하다고 역설한다.(‘제6장 자영업인의 사회적 위치 변화와 그 역할’)

결론적으로 새사연 연구자들은 전 지구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 특히 주주자본주의 사회가 된 우리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대안주체들이 대중화 전략을 세우고 연대하여, 절대 다수 국민을 운동의 주체로 참여시켜야 한다고 제안한다.

 

전반적으로 저자들은 구체적 대안을 제시했다기보다는 ‘대안 세력’들에게 새로운 역할을 찾아 연대를 해야만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열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일부 인용한 통계 수치들에 혼선이 있기도 하다. 민주노총의 사례를 대학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거나, 비관적 현실에서 아주 작은 희망의 씨앗을 찾아내어 너무 큰 기대를 거는 논리적 비약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들이 제시한 현실 분석 및 대안 방향은 분명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임에 틀림없다. 이 당위적 대안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정밀한 방안(다양한 이해가 상충되는 총노동의 연대에 대한 접근 등) 마련과 적극적 참여가 필요할 터 인데, 이는 새로운 사회를 바라는 모든 이들이 함께 풀어 나가야 할 숙제가 아닐까?

Posted by 별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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