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일은 도산 안창호 선생 순국 71주기입니다. 선생의 순국일을 맞이하여 뜻을 되새기며 우리 시대의 모습을 반추하고자 추념사를 썼습니다.

우리 민족의 위대한 스승,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꿈에도 그리던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순국하신 지 71주기를 맞이하였습니다. ‘우리 민족의 현상이 우려할 형편에 있는 이때에 제 일신의 편안이나 명성을 위하여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며 아픈 몸을 이끌고 민족을 위해 마지막 생명을 다하신 선생님의 숭고한 정신에 깊이 머리를 숙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71년 전 오늘인, 1938년 3월 10일 서울대병원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60평생을 민족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뛰어난 혁명가이자, 청년학생들을 가르치신 교육자이며, 민족의 위기 앞에 매 시기마다 민족의 진로를 제시하신 탁월한 지도자이셨습니다. 또한 민족의 장래를 위해 무엇보다 우선하여 건전한 인격이 되어야 한다고 설파하신 탁월한 인격자이기도 하셨습니다.

이러한 도산 선생님이 주신 거룩한 가르침을 우리가 제대로 물려받았는지 자문해 봅니다. 민족의 최대 숙원인 분단은 더욱 고착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탐욕의 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승자독식의 경제체제는 양극화를 부추기고, 서민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사회는 극심하게 분열되어가고 있으며 사회 지도층과 국민들의 소통 또한 부재합니다. 치열한 경쟁체제로 이끄는 교육으로 우리 아이들은 행복한 미래를 꿈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갈망하셨던 ‘복된 나라’가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아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선생님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며, 우리 민족 전도번영의 길을 찾고자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미미하고 무의미한 나라가 아니라 세계에 대하여 위대한 발언권과 감화력을 가진 지도적인 나라를 만들자고 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민족 분단을 극복하는 일이 최우선 과제일 것입니다. 민족의 통일이야말로 진정한 독립의 완성일 것입니다. 냉전시대의 최전선 지대에 섰던 우리 민족은 상호 반목과 갈등을 하던 시기를 지나 화해와 협력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남북의 상황은 우리 민족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긴장과 충돌 직전의 상황으로 가고 있습니다. 민족의 하나 됨과 번영을 위해서는 서로를 인정하고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지도자들은 정략적으로 민족의 문제를 다루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최대 과제인 통일문제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 일이 도산 선생의 유지를 받드는 길임을 확신합니다.

도산 선생님께서는 독립운동과 함께 모범적인 공화국, 복된 나라를 만들고자 노력하셨습니다. 이는 국민이 진정한 나라의 주인이 되는 것이며, 모두가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나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선거 시기에 소수에게 권력을 위임 할뿐, 중요 정책결정과정에서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과신으로 양극화는 심화되었으며, 복지정책은 뒷걸음 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복된 나라는 소수가 소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께서는 이상촌 운동을 하시면서 이기주의는 집단생활, 사회생활을 방해한다고 하며 공동생활의 정신을 함양하는 것이 애국이라고 하셨습니다. 국민이 진정한 주권자로서 앞날을 스스로 결정하고, 소외된 계층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지원하는 것이 모범적인 공화국, 복된 나라를 만드는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극심하게 분열되어 있던 시기에 자아(自我) 보다는 대의(大義)를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내게 한 옳음이 있으면 남에게도 한 옳음이 있는 것을 인정하고, 남의 의견이 나와 다르다 해서 그를 미워하는 편협한 일을 아니하면 세상에는 화평이 있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 시대의 지도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금언(金言)입니다.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소통하고, 그 속에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야 말로 선생님께서 강조하셨던 ‘대공주의’일 것입니다. 일방통행식으로 강행하고,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방식은 우리 사회를 더욱 분열시키고 공멸의 길로 이끌고 갈 것입니다. 상생을 위한 상호 존중과 열린 소통의 자세에 우리 사회의 건강한 미래가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 밖에 도산 선생님은 거짓이 아닌 참된 생활만이 우리 민족을 풍요롭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반부패 투명사회를 위해 더욱 힘쓰는 것이 선생님께서 바라던 존경받는 국가가 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또한 선생님은 교육의 중요성은 누구보다 인지하셨던 선각자이셨습니다. 우리 민족을 위한 인재 양성은 경쟁위주의 획일적 교육이 아니라, 다양성을 존중하며 인성과 창의성에 바탕을 둔 교육임을 확신합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는 흥사단을 창립하면서 우리 후배들에게 많은 교훈을 남겨 주셨습니다. 오늘날 도산 선생의 유지를 받들고 시대정신에 부합한 활동을 하고자 노력하는 우리 흥사단은 위에서 언급한 우리 시대의 과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우리는 전세계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역동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평화를 사랑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온 저력과 지혜로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희망의 씨앗들이 도산 선생님의 가르침을 토양으로 해서 꽃피울 수 있도록 현장 속에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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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극우세력의 후진성과 위험성을 드러낸 이시하라의 망언
- 중국의 북한 합병 발언은 자국의 위기를 떠넘기려는 속셈
-‘정상국가’가 되지 못하는 일본, 국제사회에서 외톨이 될 것



  군국주의 시대의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인 이시하라 도지사가 또다시 망언을 했다. 이번 발언은 과거사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넘어서 주권국가의 존엄한 국권(國權)을 무시하는 것으로 매우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시하라 도지사는 지난 13일 동경도내 일본특파원협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6자회담이 북핵 문제 해결이나 북한 개방에 진전을 가져오지 못했다며 “중국이 북한을 합병하는 것이 제일 편하다”고 말했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아시아 국가를 해방시키기 위함이라는 등 왜곡된 역사관에 의해 우리 민족을 비하하는 망언을 일삼아 온 이시하라 도지사였다. 하지만 이번처럼 한 국가의 주권이 다른 나라에 종속되는 것이 좋다고 발언한 것은 일본 극우파의 야욕과 폭력성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단순히 망언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없는 사안이다.

 이러한 망언은 일본이 역사에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범하고도 아직 반성을 하지 않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경제발전으로 외적 성장은 했지만, 내적으로는 군국주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극명한 사례라 하겠다. 그래서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아직 ‘정상국가’(normal state)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시하라 뿐만 아니라 주요 정치인들이 계속해서 잘못된 역사를 정당화하고 타 국가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망언을 하는 것은 일본 정치의 후진성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에서 벗어나기가 무섭게 세계경제 악화로 어려움에 처하고, 6자 회담 등 국제무대에서 안하무인격으로 자국의 입장만 주장하다가 외톨이가 되었다. 이러한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철저한 자기반성을 하기보다는 국민의 시각을 외부로 돌리는 극우파의 뻔한 속셈이 보인다.

 한편 이러한 일본 극우파의 위험한 발언은 한반도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한반도의 긴장 관계를 바라는 일본 극우파는 북미관계 개선을 바라지 않고 있다. 북한을 적대시하며 미국을 등에 업고 지역 패권을 유지해온 일본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또한 그동안 남북관계의 개선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적 분위기가 무르익은 것도 일본으로서는 탐탐치 않았을 것이다. 불안하고 조급했을 것이다. 그래서 최근 남북관계의 경색을 호기라 생각하고 이를 고착화시키기 위한 술책으로 이시하라의 발언이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정부는 한일 관계의 패턴을 잘 읽고 대처하기 바란다. 매번 한일 정상회담이 있은 직후 일본은 뒷통수를 치는 전술을 구사해 왔다. 지난 해 정상회담 직후에 독도를 교과서 해설서에 명기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그 대표적 예이다. 정부는 바로 눈앞에 보이는 실리에 급급해 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치밀한 대일 관계 전략을 수립하기 바란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일본이 진정으로 좋은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이웃 나라를 유린하는 것은 결코 일본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파하셨다. 일본은 아직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을 직시하기 바란다. 우리는 어엿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려면 일본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뼈아픈 반성과 함께 철저한 자기성찰을 할 것을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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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역사를 올바로 풀어야 미래가 보인다.


나는 진정으로 일본이 망하기를 원치 않고 좋은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이웃인 대한을 유린하는 것은 결코 일본의 이익이 아니 될 것이다. 원한 품은 2천만을 억지로 국민 중에 포함시키는 것보다 우정 있는 2천만을 이웃 국민으로 두는 것이 일본의 득일 것이다. 내가 대한의 독립을 주장하는 것은 동양의 평화와 일본의 복리까지도 위하는 것이다.” -도산 안창호
 

또 도진 일본 군국주의 망령

또 도졌다. 일본의 군국주의 망령이.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의 망령도 점점 심해져 간다. 우리 국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14일 한국정부에 문부과학성 중등교과서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을 명기한다고 통보했다. 이에 더 나아가 고교 해설서에도 독도 영유권을 명기하겠다고 한다. 원래대로라면 2013년부터 독도 영유권 내용이 교과서에 반영되지만 내년부터 독도 영유권 교육을 강행한다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한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상황에서 후쿠다 일본 총리는 나 몰라라 휴가를 떠났다. 그 사이일본 언론은 독도 영유권 교육에 대한 새로운 소식을 내놓는다. 일본 언론이 계속 정보를 흘리고, 한국 정부가 항의하면 일본 정부는 모르는 일이라고 답변한다. 일본 정부와 언론의 교묘한 역할분담에 의한 ‘치고 빠지기식’ 전술이다. 이러한 전술에 우리는 계속 뒤통수를 얻어맞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이렇게 일본의 독도 영유권 침탈 야욕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교묘한 해설서 내용과 日 정부의 적반하장

일본 정부는 해설서에 “우리나라(일본)와 한국 사이에 다케시마(독도)를 둘러싸고 주장에 차이가 있다는 점 등도 언급하여, 북방영토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영토·영역에 관해 이해를 심화시키는 것도 필요하다”고 게시했다. 여기서 북방영토란 일본이 러시아와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쿠릴열도 지역으로서, 해설서에는 “북방영토가 우리나라(일본)의 고유 영토이지만, 현재 러시아 연방에 의해 불법 점거되어 있기 때문에, 그 반환을 요구하는 것 등을 정확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해설서의 내용에 따르면 북방영토와 독도는 같은 문제로 인식된다. 즉 독도는 일본의 고유영토이고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기 때문에 반환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라는 내용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내용에 일본 정부는 적반하장(賊反荷杖)격으로 ‘한국에 대한 배려’로 당초 보다 표현 수위를 약화시켰다고 선전한다.

참고로 이 해설서는 학습지도요령처럼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실제 교과서 편집은 해설서의 지침에 따라 작성되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일본 정부가 해설서를 수정하지 않을 경우 2013년부터 발간되는 중학교 교과서에는 독도를 자국의 고유영토하고 표기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수업을 진행하게 될 것이다.

역사적, 국제법적, 실효적으로 독도는 우리 영토

일본은 자국의 역사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셈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역사학자는 한명도 없다는 어느 신문의 기사처럼, 역사적․국제법적․실효적으로 독도가 우리의 영토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세종실록지리지(1432년)’, ‘동국여지승람(1481년)’ 등의 고서(古書)에는 신라 지증왕 13년(512년)에 우산국이 신라에 병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우산국은 지금의 울릉도와 독도를 말한다. 또한 독도를 다룬 일본 최초의 문헌인 ‘은주시청합기(1667년)’에도 ‘다케시마(울릉도)와 마쓰시마(독도)는 고려의 영토이고, 일본의 서북쪽 국경은 오키섬을 한계로 한다’고 소개되어 있다. 17세기 일본을 지배했던 도쿠가와 막부는 시마네현에 사는 어부가 울릉도와 독도에 가서 고기잡이를 하게 해달라고 요청하자, 이들에게 ‘도해(渡海)면허’를 내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도해면허란 다른 나라로 가는 것을 허락하는 증서이다. 즉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사례이다. 18세기에도 일본 내무성이 전국 지도를 제작하는 문제로 메이지(明治) 정부의 최고기관인 태정관에 울릉도와 독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문의를 한 적이 있다. 이에 태정관은 ‘지령문’을 통해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재차 강조했고, 이 지령문을 시마네현에 하달했다. 또한 1920년대에 발간된 일본의 교과서에도 독도가 조선(한국) 땅으로 명기되어 있는 것이 최근 발견되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것은 일본 역사서․문헌에서도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이 계속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자국의 역사를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아니겠는가?

일본은 1905년에 무주지(無主地)였던 독도를 선점했기에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한다. 이때는 이미 일본이 조선을 강압적으로 지배하던 시기로, 조선은 외교권을 빼앗긴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본 내무성은 독도가 조선영토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당시 일본정부가 한국 땅임을 증명했는데도 불구하고, 무주지인 독도를 선점했다는 논리를 펴는 것은 자가당착이다.(일본이 독도에 눈독을 들인 것은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전략적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 숙종시기 안용복 선생이 일본에 건너가 독도가 조선 땅임을 확약 받은 후로, 조선정부가 관리를 보내 울릉도와 독도를 관리했다는 증거가 있는데도 무주지라고 억지 주장을 펼칠 수 있단 말인가?

한편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국제법상 기관인 연합국최고사령부(SCAP)는 제국이 빼앗은 영토는 원래 국가에 반환해야 한다는 ‘카이로선언’과 ‘포츠담선언’의 정신에 따라 1946년 1월 29일 지령(제677호 제3항)을 통해 제주도, 울릉도,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판정했다. 또한 한국정부가 수립되자 1948년 12월 유엔총회에서는 대한민국의 영토와 주권을 승인했는데, 여기에도 독도는 한국의 영토로 포함되어 있었다. 일본이 국제 규범을 어기고 제국주의 침략을 강행하면서 빼앗은 영토가 국제법 기구를 통해 한국으로 귀속된 것이 공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만 모르쇠다.

일본의 끊임없는 교활한 술책

제국주의 전쟁에서 패망한 일본은 인류 역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잔혹한 행위를 자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았다. 군국주의 망령이 여전히 일본을 지배하면서 일본인을 과거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로 내세우는 것 중에는 1951년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있다. 연합국은 일본을 1952년에 독립시키기에 앞서 강화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강화조약을 준비하면서 양측은 ‘일본의 영토처리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하였는데, 이 문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에 한반도와 그 주변의 섬들에 대한 완전한 주권을 이양하기로 합의’하면서 ‘그 섬에는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 독도를 포함 한다’고 명시했다. 강화조약 초안에도 이 합의서에 근거해 독도 영유권이 명시되어 있었는데, 일본의 집요한 로비활동으로 제6차 초안에서 독도가 빠지게 되었다. 이에 영국, 호주 등이 영토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며 항의했지만, 미국은 아예 독도문제를 논의 대상에서 조차 빼버렸다. 일본의 사라지지 않은 야욕을 드러낸 사례이다.

1965년에 체결된 한일어업협정에서도 ‘양국은 자국의 영해에서만 배타적으로 어업을 한다’고 하면서 독도문제를 명확히 하지 않고 모호하게 얼버무렸다. 이는 ‘대일청구권’이란 명목으로 일본으로부터 거액의 자금을 지원받았던 박정희 정부의 취약성을 이용하여 분쟁의 불씨를 계속 살려나간 것이다.

한편 일본은 1994년에 ‘유엔해양법협약’이 발효되고 새로운 국제 해양질서가 개편되는 시기에 맞추어 또다시 도발을 감행했다. 새로 발효된 해양법에 따라 일본은 한국의 기점을 울릉도로 하고, 일본의 기점을 독도로 하여 울릉도와 독도 사이를 양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으로 삼자고 선제공격을 해왔다. 아젠다를 선점하기 위한 일본의 약삭빠른 제스처였다. 이에 한국 정부는 한국의 기점은 독도로, 일본의 기점은 오키섬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일본은 같은 주장만 반복했다.

당시 한국은 소위 IMF사태를 맞아 절체절명의 국가 위기에 놓여 있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었던 일본은 간교하게도 한국의 약점을 이용하여 어업협정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갔다. 양국 정부는 결국 1998년에 울릉도와 오키섬을 기점으로 하는 EEZ 경계선을 확정하는 ‘신(新)한일어업협정’을 체결하게 된다.(이는 국제법상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굴욕적인 협정이다.)

과거사를 풀지 않으면 미래로 나갈 수 없어

매번 뒤통수 맞은 대일(對日) ‘냉온탕 외교’ 반성해야

앞서 일본에 대한 비판을 했지만, 한국 정부가 독도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 또한 비판받아야 한다. 특히 우리 정부는 경제가 위기를 맞이할 때 강하게 독도문제를 들고 나오는 일본에게 어정쩡하거나, 크게 양보하는 정책을 폈다.(제2의 IMF사태가 도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한 가운데 일본이 이와 같이 강한 도발을 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우리 역대 정부는 취임 초기 하나같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지향하자’고 일본에 제안했다가, 뒤통수를 맞은 뒤에야 강경정책으로 급선회하는 소위 ‘냉온탕 외교’를 반복해 왔다. 일본의 대(對) 한반도 정책에서 독도 영유권 주장은 바뀔 수 없는 명제라는 것을 정부는 몰랐던 것일까?* 과거를 올바로 풀지 않으면 과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몰랐던 것일까?

*일본에게 독도는 민족주의 자극을 통한 국민통합이라는 정치적 이득뿐만 아니라, 영토 및 배타적 경제수역 확보를 통한 해양자원 확보라는 경제적 이득, 한국․러시아를 근거리에서 대응할 수 있는 지리적․군사적 이득이라는 전략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평화와 협력을 제안하는 것과 과거사를 풀고 가자고 요구하는 것은 상충된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 발전적인 미래지향적 관계를 바란다면 양국의 발목을 묶고 있는 과거사부터 확실히 풀고 가야한다. 우리 정부는 일본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표방하면서도 부단히 일본의 왜곡된 주장을 바로잡고 제국주의적 침략의도를 포기하게 만들어야 한다. 일본 사람은 혼네(本音, 속마음)와 다테마에(建前, 겉모습)가 다르다는 것을, 한 손에는 ‘국화’를 다른 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는 것을 정책 담당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강력하면서도 냉철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일본과의 관계를 풀어가야 할 것이다.

*루스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이라는 저서에서 평화(국화)를 말하면서도 전쟁(칼)을 숭상하는 일본인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해부했다.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흥사단의 역할

세계의 다른 지역과 달리 동북아는 아직 민족주의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 정부가 체제의 안정을 도모하고, 새로운 활력을 동원하고자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그래서 현재 동북아는 긴장이 감돌고 있다.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나라, 역사에서 교훈을 찾지 못하는 민족들과 이웃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평화롭고 협력적인 동북아를 만들어갈 수 있는 국가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 중화주의와 군국주의의 야욕을 호시탐탐 들고 나오는 국가들이 동북아 평화를 이끌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주변의 위험을 극복하고 동북아 평화를 실현하는 것은 인류발전을 위한 우리의 사명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명을 성과 있게 실천하는 데에는 정부, 학계의 역할 못지않게 시민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일제의 침탈에 맞서 국권을 지키기 위해 헌신했던 우리 흥사단은 이 문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시민들이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국제정세를 폭넓게 이해하는 자세를 갖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또한 정부-학계-시민단체가 함께 하는 연대조직을 구성하여 종합적이고 지속적인 관점에서 일본의 왜곡을 바로잡고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실천해야 한다. 나아가 일본 정부에 강하게 대응하면서도, 양심적인 일본의 시민(단체), 학자, 지성인들과의 교류․연대를 통해 군국주의 집단 망상에 빠져 있는 많은 일본인들을 깨어나게 하고 일본 우익을 압박해야 할 것이다.

약해서 가만히 있는 것은 진정한 평화의 상태가 아니다. 상대가 평화를 깨지 못하도록 억지(deterrence)하는 힘이 있어야 진정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평화의 힘, 폭넓은 안목과 전문적 식견, 타자(他者)의 잘못을 끌어안을 수 있는 관용의 자세가 동북아의 안정과 화해, 평화를 이뤄내는 토대가 될 것이다. 이는 다름 아닌 도산 선생의 ‘힘의 철학’, ‘대공주의’를 실천하는 것이다.

<격월간 기러기, 2008년 7-8월호>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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