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른 건 당신 닮았는데, 이런 것은 안 닮았는지 모르겠어요.”

아침에 아내가 던진 말이다.

내용인즉슨,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이 전혀 회장, 반장 선거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출마해서 소견을 발표한다고 한다. 소수의 몇 명에게만 출마 기회가 주어졌던 우리 세대보다는 훨씬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문제는 별로 출마 의지가 없는 우리 아들도 무언가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넌 앞에 나가서 무슨 말을 할래?” 엄마가 물으니,
아들은 “난 OO가 회장이 되었으면 좋겠고, OO가 반장이 되었으면 좋겠어.”라고 답한다. 

“회장이나 반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니?”
“응, 나보다 훨씬 잘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아침밥을 먹으면서 아이에게 민주주의가 뭐고, 선거가 왜 중요하고, 주인의식이 어떻고… 아이가 이해 못할 줄 알면서도 변죽만 올렸다.

저녁에 집에 들어오니, 아내가 속상해 하며 말한다.
“친한 친구들은 다 회장, 부회장, 반장, 부반장이 되었는데, 우리 OO만 아무 것도 못 됐어요!” 

아들에게 오늘 선거가 어땠느냐고 물었다.

부회장인 된 친구가 ‘난 회장이 되고 싶을 뿐이고…’라고 개그맨 흉내 낸 것이 너무나 재밌었다고 답한다. 그리고 OO가 회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떨어져서 아쉽다고 한다.

자기 이야기는 안 한다.

잠자리에서 살짝 물었다.

“앞으로도 회장이나 반장 할 생각 없니?”
“아니요. 조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왜?”
“그냥, 된 아이들 보니까 좋아보여서요.”

별 생각없이 선거에 참여했지만, 다른 친구들과 비교가 되면서 약간의 자극을 받은 것 같다. 새로운 경험을 해 본 아들이 조금 커간다는 느낌이 들면서, 경쟁 사회에 던져지고 자신을 끊임없이 누군가와 비교하는 세상을 맛본 것 같아 씁쓸한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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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기(초등학교 5학년)

1982년 3월 10일 화요일 

※ 나의 명언 : 실망을 하지 말라. 실망하면 자기의 실력이 퇴보한다.
 

반장선거를 했다.
내가 29표, 그 다음이 15표다.
내가 반장이 되었고 박상희가 부반장이 되었다.

 

<반장선거>

반장 선거를 하네.
모두들 마음이 두근두근.
‘문성근’하면 와! 하고
OOO 하면 우! 하네. 

반장된 사람은 좋아하고
떨어진 사람은 실망하고. 

다른 애들한테 미안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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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시험 성적은 엄마 실력이다?
학부모 사표를 내고 싶다는 아내.
 

오랜 만에 시간이 나서 초등학교 시절의 일기를 읽고 있었다. 역시 야구 시합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가끔 권투 이야기. 블로그에 쓸 소재를 찾으면서 읽고 있었는데, 아내가 막걸리 한잔 하자는 것이다.

아내가 어제 시부모님이 댁에 가서 김장을 하면서 막걸리를 샀는데 몇 병이 남아서 가져왔다는 것이다.(나는 대학생 대상 1박 2일 워크숍이 있어서 집을 비웠다.) 김치와 함께 한잔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내는 큰 아이 공부를 시키느라 지쳤다고 한다.
내일 초등학교 1학년인 큰 아들이 시험을 본다. 기말시험이다. 난 아직 어린 아이들이 시험을 본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안 들었고, 그냥 평소 하던 대로 시험을 보면 된다는 입장이었고, 아내는 그래도 시험이니 만큼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아이와 시험공부를 하던 방에서 큰 소리가 몇 차례 난 후 잠잠해 졌다.

난 아이에게 그렇게 부담을 줄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다.
자신은 다른 엄마에 비하면 ‘방종’에 가깝다고 한다. 그러면서 시험 때문에 가장 스트레스 받는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엄마들이라고 한다. 엄마들끼리 경쟁이 붙는다는 것이다. 엄마들이 하는 것만큼 아이들 시험 성적이 나온다는 것이다.

자신도 아이에게 공부에 대한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학부모 사표를 내다 싶다고 한다.  

아이들에게는 꿈을 심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너무 뒤떨어지면 아이도 힘들어 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신경만 쓰고, 신나게 놀고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자고 이야기 했다.

같은 동네에 사는 큰 아이 친구 어머니는 아이 숙제 도와는 주는 것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한다. 교육 당국자들은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이렇게 스트레스를 주면서 어떤 세상을 꿈꾸고 있는 것인지, 자신들은 아이들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지는 않은 지 묻고 싶다. 학부모들이 모두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부모의 경제력, 학력 수준에 따라 아이의 성적이 좌우되는 세상에서 진정한 ‘교육’의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아내는 미안한 마음이 있는지, 큰 아이를 꼭 껴안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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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추억의 일기장 >



1981년 11월 4일 수요일 날씨 맑음

오늘의 중요한 일 : 시험점수 부모님께 말하기 

오늘은 기분이 나빴다.

시험 때문이다.

다른 것들은 조금 그럴 듯 하게 받았는데, 산수가 65점이다. 국어가 85점, 자연이 90점, 사회가 85점이다.

저녁에 아버지와 어머니께 “엄마, 아빠. 저 시험 총점이 325점이예요.” 하고 말했다. 아버지께서는 “잘한다, 잘한다.” 하시며 꾸중해 주셨다. 기분이 몹시 안 좋다.

오늘의 반성 : 공부 열심히 하기

  * 초등학교 때, 꽤 공부를 잘 했는데 이때만 시험을 못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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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조차 교육이 되어 버린 현실과 삶터가 아닌 동네

1981년 10월 16일, 보이스카우트에서 축구를 해서 1-0으로 이겼다.

10월 19일에는 4학년 4반과 야구시합을 해서 4-0으로 이겼다. 이때까지 우리 반(11반) 야구 성적은 18전 14승 2무 2패였다. 그리고 나의 타격 순위는 반에서 2위였다.(“우리 반 타격 1위는 현철이고, 2위는 재운이와 나다.”) 이 날 일기장 ‘내일의 할 일’에는 “발야구나 축구해서 이기기”라고 썼다.

10월 21일에는 8반과 야구시합을 하여 12-0으로 이겼다. 기권승이다. 이 날 나는 4타석 3안타, 1포볼로 꽤 좋은 성적이었다. ‘내일의 할 일’에는 “야구 이겼다고 자랑하기”라고 썼다. 이 날 승리로 우리 반 야구 성적은 19전 15승 2무 2패가 되었다.


당시에는 야구와 축구를 거의 매일하다시피 한 것 같다. 야구와 축구는 단체시합이다. 약식으로 시합을 하더라도 양 팀 합하여 20명가량은 있어야 한다. 시합이 성사되면 그 날 20여명의 아이들이 모여서 시합을 한다. 옆에서는 다른 팀 시합이 이루어지곤 하였다. 그만큼 자유롭게 뛰어 노는 아이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 신나고 재밌어서 하는 것이다. 요즈음은 노는 것도 과외를 받는 다고 한다. 운동하는 것도 선생을 모셔서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때론 싸우기도 했지만 옳고 그름을 함께 판단했다. 그러나 이제는 정해진 커리큘럼과 규칙에 따라 하고, 판단도 누군가가 대신 해준다. '놀이자체가 생활이던 시절'을 떠나 '놀이조차 교육이 되어버린 시절'에 살고 있다.

또한 아이들이 언제고 놀 수 있는 공터가 있었다. 시합이 생기면, 공만 가지고 주변 공터에 가면 시합을 할 수 있었다. 요즘 동네엔 공터가 없다. 땅을 놀리는 것은 경제적으로 손해 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골목조차 사라졌다. 차들이 점령했기 때문이다. ‘골목대장’이란 말도 사라졌다.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공터는 동네의 문화가 생겨나는 곳이었다. 이제 동네의 문화는 사라졌다. 간혹 주민운동이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주민간 교류와 문화가 있지만, 이 역시 이벤트성이 강한 일회 행사인 경우가 많다. 자기가 사는 곳에 자신의 삶이 이루어 지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동네가 아이와 어른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이야기도 하고, 놀기도 하는 삶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일명 ‘동네의 부활’을 꿈꾸며.

 

※ 당시에도 대학야구는 별로 인기가 없어나 보다.

1981년 10월 20일에는 일기장에 <대학야구>라는 시(?)를 썼다.

  대학야구

관중없는 운동장에(서)
야구를 하니,
실감 없겠네.

그러나, 그러나
관중 몇 명이 있네. 

그것은 가을 바람
이겨라, 이겨라 소리치며
휘∼위 소리 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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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당시 초등학교) 1학년(1978년)부터 대학교에 다닐 때까지 일기를 썼다. 매일 쓴 것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 때까지였지만. 아쉽게도 초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때까지 쓴 일기장을 잃어버렸다. 지금가지고 있는 일기장은 초등학교 4학년(1981년) 10월부터 쓴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항상 철없이 즐겁고 밝았던 시절이었던 것 같은데, 일기를 보니 많은 고민과 걱정을 했던 것 같다. 어제 하루종일 일기를 읽으며 추억에 잠겼다. 제일 많이 나오는 이야기는 야구와 축구, 공부(시험), 친구와 관련된 내용이다.

이제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추억을 ‘그때, 거기’에서 ‘지금, 여기’로 끌어내어 보고자 한다. 가능한 있는 그대로(선생님께서 맞춤법 틀린 부분 수정한 내용도) 옮기고자 한다.

 

                                  <초등학교 시절 쓰던 다양한 일기장들>

1981년 10월 12일 월요일 날씨 맑음

오늘의 중요한 일 : 시험지 하기
오늘의 착한 일 : 재운이 사과 줌 

요새는 공부에 너무 뒤떨어진다. 오늘 시험지 하는데, 모르는 게 너무 많아 시험지를 찌졌다.(찢었다.) 사회와 자연에서 모르는 게 아주 많았다. 내 머리가 녹이 쓴 것 아닐까? 그리고, 내일 그릴 그림연습을 했다.

요새 너무 빨리 잔다. 아∼ 나는 빨리 이 고비를 넘기면 좋겠다.

오늘의 반성 : 모르는 게 있으면 차근차근 배우겠다.
내일의 할 일 : 머리에 녹 쓴 것을 기름쳐서 열심히 공부하기

 

보관하고 있는 일기 중 가장 오랜 된 일기의 내용은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이다. 당시 지금과 같은 학원, 과외는 없었다. 그냥 학교 다녀와서 동네에서 놀다가 숙제나 공부를 하는 정도. 그래도 공부는 꽤 했던 것 같은데, 남들보다 뒤떨어 진 것 같다며 “머리에 기름”을 쳐서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매우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당시 친구들에 비해 나는 좀 민감한 편에 속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요즘 아이들은 어떨까? 사회적 분위기가 달라져서 강도 높은 학습과정은 일반적인 것으로 취급하지만, 자살을 생각하는 초등학생이 19.9%나 된다(2007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건강사회를 위한 보건교육연구회 공동조사)는 설문결과는 현재 교육 행태가 상당히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살로 내모는 공부는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다.  

“요새 너무 빨리 잔다”는 글을 보고, 잠자는 시각은 보았더니 ‘8시 50분’이다. 5학년, 6학년 시절의 일기장을 봐도 ‘너무 일찍 잔다’는 내용이 간간히 나온다. 우리 집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분위기였다. 현대인이 점차 ‘올빼미’형이 되어가듯이 아이들도 잠자는 시각이 점점 줄어든다. 세계 각국 학생들의 잠자는 시간을 비교한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 아이들의 취침시간은 평균보다 훨씬 적었다.

최근 학생들이 ‘잠잘 수 있는 권리’‘아침 밥 먹을 수 있는 권리’를 달라는 부르짖음은 괜한 투정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가, 특히 교육계가 아이들의 목소리에 좀더 신중하게 귀를 기울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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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를 놀이방에 보낸 첫날
(2002년 7월 15일 오전 10시 20분)

 

태웅이는 지금쯤 놀이방에서 열심히 놀고 있겠지? 혹시 울고 있는 것을 아닐까?

때때로 짜증을 내며 울곤 하지만, 항상 밝게 웃고 재미있게 노는 태웅이는 놀이방에서도 잘 지내리라 생각한다.

작년 6월달 이후로 태웅이는 외할머니께서 보살펴 주셨어. 외할머니의 따스한 보살핌으로 태웅이는 무럭무럭, 씩씩하게 잘 자라주었어. 그렇게 보낸 지가 벌써 1년이 지났어. 한 10일전에 태웅이는 서울 생활을 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오늘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거야. 인생을 살면서 기록할 만한 날이라 생각되어 아빠가 대신 몇자 적는다.

 

오늘 아빠는 아침 6시 30분경에 태웅이가 장난치는 소리에 깨어났어. 태웅이는 벌써 엄마랑 아침 밥을 먹고 나서, 놀이방을 가는 날이라는 것을 아는 듯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놀고 있었다. 아빠가 씻고 아침 밥을 먹는 동안 엄마는 태웅이를 목욕을 시켜주었어. 깨끗하고 깔끔한 태웅이의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엄마는 출근시간이 늦도록 태웅이를 씻기고 예쁜 옷을 입히고 하느라 정신이 없으셨어. 엄마가 7시 30분경에 출근을 하자 태웅이는 엄마랑 떨어지는 것이 싫어서인지 엄마를 따라 나가겠다고 자꾸만 신발을 가리키며 밖으로 나가자고 아빠에게 우는 소리로 부탁을 하는 듯 했어. 하지만 아빠는 태웅이가 놀이방 갈 준비를 빨리 해야 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고. 이때부터 태웅이는 계속 보채기 시작했어. 태웅이는 계속 아빠를 졸졸졸 쫓아다니며 억지로(?) 슬픈 표정을 지으며 계속 보챘고. 한동안 이렇게 아빠랑 실랑이를 벌이다가 8시 15분이 되어서 집을 나서게 되었지. 태웅이가 먹을 우유, 빵, 치즈, 물, 우유병, 컵을 챙기고, 갈아입을 옷, 손수건을 쇼핑백에다 넣은 다음, 양말을 신겼지. 양말을 신긴 다음부터는 태웅이의 표정이 밝아지더라. 신발을 신고 나서는 태웅의 특유의 웃음소리-키득키득-를 내며 신나 하는 거야. 집 밖으로 나가서 몇 미터 걷더니 안아달라고 해서, 한 손에는 쇼핑백을 한 손에는 태웅이를 안고 걷기 시작했어. 이상하게 다른 사람이랑 다닐 때는 잘 걸어 다니면서 아빠랑 다닐 때는 왜 자꾸 안아달라고 하지는 모르겠어. 왜 그러는 것일까?

집에서 놀이방까지는 걸어서 2-3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놀이방이 있는 건물 1층에 있는 가게에 가서 태웅이 귀저기를 사고 2층에 있는 놀이방으로 갔어. 문을 열고 놀이방으로 들어가니 태웅이보다 1살 정도 많은 아이가 달려나와 호기심 어린 눈으로 태웅이를 쳐다보더라. 그 녀석이 태웅이게게 잘 해 주기를 속으로 부탁하면서 태웅이 신발을 벗기고 방으로 들어갔어. 그때 원장 선생님이 나오셔서 ‘야, 우리 태웅이 일찍 왔네’ 하시면서 태웅을 안아 주시더라. 처음에 태웅이는 아빠를 쳐다보면 아빠에게 오려는 듯 손을 내밀어 뭐라고 이야기를 했어. 선생님이 태웅이를 내려놓자 아빠에게 착 달아 붙더군. 선생님에게 태웅이가 심하게 울거나 보채면 연락하라고 이야기를 하고, 아빠는 태웅이 눈치를 보면서 바닥에 계속 앉아 있는 척을 했어. 선생님이 놀이기구가 있는 방으로 태웅이를 안고 가자 태웅이는 좋아서 발을 동동 구르며 키득키득 기렸지. 이때 아빠는 놀이방으로 나와 집으로 왔어.

집에 와서 집안 정리하고 차 한잔 마시고, 태웅이가 잘 놀고 있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엄마, 할머니한테서 전화가 왔어. 태웅이 놀이방에 잘 갔느냐고. 엄마가 놀이방 선생님께 전화를 하고 다시 아빠에게 전화를 해서, 태웅이가 잘 놀고 있다고 말해 주었어. 아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외할아버지께 이 소식을 전화를 알려 주었어.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태웅이를 사랑하고 걱정하고 잘 되기를 바라고 있어.

이러한 좋은 환경 속에서 태웅이가 씩씩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는 바란다.

 

이 부분은 태웅이가 고등학교를 갈 정도 나이가 되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개체발생은 개통발생을 반복한다는 말이 있어. 즉 사람의 경우, 인류가 처음 생겨나서 지금까지 진화해 오는 과정(개통발생)을 한 인간이 태어나서 그대로 재현(개체발생)한다는 것이지. 인류가 처음 생겨났을 때의 모습은 한 인간이 태어났을 때의 모습과 같고, 인류가 기어 다니다가 걸어 다니기 시작하고(호모 에렉투스), 도구를 사용하면서 생각을 발전 시켜나가는(호모 사피엔스) 과정은 한 인간이 태어나서 어른이 되는 과정과 유사하다는 것이야. 인류는 짧은 시간에 엄청난 변화(일반적으로 발전이라는 말로 표현되는)를 겪어 왔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역사의 발전, 승리인 듯 이야기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인간은 자신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바쁘게 어디론가 향해 경쟁을 하며 달려가게 되었지. 인간성을 상실함과 동시에 각종 차별, 소외가 생겨나고 특히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지구 환경은 물론, 인간 자신의 생명까지 위협하게 되는 상황을 만들게 되었어. 그래도 사람들은 지금까지 변화해온 속도보다 더 빨리 변화하기 위해 어디론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어. 갓 태어난 아기는 한 가정에서 오랫동안 인류가 원시생활을 해오던 것처럼 가정(1차 집단)이라는 이해관계가 없는 울타리에서 조건 없는 사랑을 받으며 자라야 하는데, 현대인들은 빨리 빨리 달려가기 위해 어린 아이를 사회기관(놀이방, 유아원, 유치원)으로 보내지. 물론 집에서 지내는 것보다 체계적으로 많은 것을 배우며 사회(2차집단)에 적응을 하게 되는 장점은 있겠지. 하지만 조건이 허락된다면 아빠는 오랜 기간의 원시생활처럼 태웅이도 사회체제에 편입되지 않고 태웅이 만의, 또는 우리 가족만의 테두리에서 서로의 사랑을 만들어가고, 개성을 형성해나가는 시간을 오랫동안 가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어. 하지만 아빠와 엄마도 사회에서 생활을 하는 사람이고,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이 우리에게도 크게 예외인 것은 아니어서 태웅이도 놀이방에 가게 된 거야.

 

야∼ 태웅이가 놀이방에 가는 것 가지고 너무 심각하게 글을 쓴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어쩌면 집에서 아빠랑 엄마랑 있는 것보다 놀이방에 가서 비슷한 또래들이랑 노는 것을 태웅이가 더 좋아 할 수도, 태웅이 에게 더 많은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우리는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야 할 운명을 타고 태어났으니까 항상 재미있게 생각하고 살아가자꾸나. 아빠랑 엄마는 집에서 태웅이랑 보내는 시간에 더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할께.

오늘 첫날이라서 아빠가 2시 정도에 데리러 갈 거야.(적응이 되면 오후 7시 30분까지 놀이방에서 놀아도 돼) 그때까지 너의 첫 사회생활을 마음껏 즐기고 있으려무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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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오후 1시 30분) 놀이방 선생님이 집으로 전화를 하셨다. 태웅이가 형아들(놀이방에서 태웅이가 가장 어리다)을 쫓아다니며 신나고 놀았으며, 밥도 잘먹고 우유도 잘먹고, 지금은 막 잠이 들었다고 한다. 너의 모습이 눈에 선하구나. 지금은 무슨 꿈을 꾸며 자고 있을까. 정말 다행이다. 우리 태웅이는 너무너무 좋은 아이야. 엄마도 할머니도 이 소식을 듣고 태웅이가 너무 대견하다며 좋아하셨어. 태웅이는 우리 가족에게 기쁨을 주는 아이야. 너무 고맙다. 태웅이가 잠에서 깨면 선생님이 연락을 준다고 했어. 조금 있다가 만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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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3월 25일

조금 지났으니 이야기해도 되겠구나.

태웅이가 태어나던 날, 저녁 늦게 의사가 아빠를 불렀어. 그때 엄마는 수술에서 다 회복되지 않아서 침대에 누워있었고 아빠는 간호하고 있었단다.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니 네가 너무 작아서 무슨 이상이 있나 정밀조사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입원수속을 밟으라고 하더라. 순간 무척 놀라고 걱정이 되었지. 마치 너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니. 입원수속 하고 정밀검사 받는 수속을 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어.

수속을 하면서 내 자신이 많이 걱정되는 데도 불구하고, 이 소식을 엄마가 듣게 되면 얼마나 상심이 클까하는 또 다른 걱정이 머리 속에 들어오더라고. 어떻게 이야기해야 엄마가 걱정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각했다. 마침 모든 아기들에게 정부에서 무료로 검사해주는 것이 있어 그 신청서를 들고 가서 엄마에게 말했지. 엄마는 직감적으로 너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아빠의 말을 믿지 않았어. 하지만 아빠가 정말로 아무 이상이 없다고 계속 이야기하자 수긍을 했지.

2,3일이 지나고 엄마가 수술에서 회복되어 걸어다닐 수 있게 되자 태웅이를 면회할 수 있게 되었어. 그전에는 아빠만 태웅이를 만나 볼 수 있었거든. 그 때서야 엄마에게 그때 사정을 이야기하고 별 문제없으니 안심하라고 이야기했어. 물론 태웅이는 정밀조사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서 아빠, 엄마 모두 기뻐하고 안심을 할 수 있었단다.

부디 아픈 곳이 없기를 엄마, 아빠는 간절히 기도했단다. 그 기도는 지금도 매일 매일 하고 있단다. 마치 바람 앞에 촛불이 있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태웅이를 돌보고 있단다.

오늘은 약간 감기 기운이 있구나. 잘 이겨내기를 기원한다. 물론 아빠, 엄마도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도록 최선을 다할게.

너의 건강은 곧 아빠, 엄마의 행복이란다.

(또한 아빠가 태웅이를 입원, 정밀진단 수속을 하고서도 엄마에게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이야기 한 것은 아직 수술에서 회복되지 않은 엄마를 걱정해서란다. 아빠도 속으로는 많이 걱정이 되었지만 엄마가 더 많이 걱정하고 힘들어 할까봐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 것이란다. 이처럼 아빠의 위치란 한번 더 생각하고 때로는 자신의 감정보다는 가족의 안녕을 더 생각하는 것인가 보다. 너도 커서 어른이 되면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자제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자세를 갖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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