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조차 교육이 되어 버린 현실과 삶터가 아닌 동네

1981년 10월 16일, 보이스카우트에서 축구를 해서 1-0으로 이겼다.

10월 19일에는 4학년 4반과 야구시합을 해서 4-0으로 이겼다. 이때까지 우리 반(11반) 야구 성적은 18전 14승 2무 2패였다. 그리고 나의 타격 순위는 반에서 2위였다.(“우리 반 타격 1위는 현철이고, 2위는 재운이와 나다.”) 이 날 일기장 ‘내일의 할 일’에는 “발야구나 축구해서 이기기”라고 썼다.

10월 21일에는 8반과 야구시합을 하여 12-0으로 이겼다. 기권승이다. 이 날 나는 4타석 3안타, 1포볼로 꽤 좋은 성적이었다. ‘내일의 할 일’에는 “야구 이겼다고 자랑하기”라고 썼다. 이 날 승리로 우리 반 야구 성적은 19전 15승 2무 2패가 되었다.


당시에는 야구와 축구를 거의 매일하다시피 한 것 같다. 야구와 축구는 단체시합이다. 약식으로 시합을 하더라도 양 팀 합하여 20명가량은 있어야 한다. 시합이 성사되면 그 날 20여명의 아이들이 모여서 시합을 한다. 옆에서는 다른 팀 시합이 이루어지곤 하였다. 그만큼 자유롭게 뛰어 노는 아이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 신나고 재밌어서 하는 것이다. 요즈음은 노는 것도 과외를 받는 다고 한다. 운동하는 것도 선생을 모셔서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때론 싸우기도 했지만 옳고 그름을 함께 판단했다. 그러나 이제는 정해진 커리큘럼과 규칙에 따라 하고, 판단도 누군가가 대신 해준다. '놀이자체가 생활이던 시절'을 떠나 '놀이조차 교육이 되어버린 시절'에 살고 있다.

또한 아이들이 언제고 놀 수 있는 공터가 있었다. 시합이 생기면, 공만 가지고 주변 공터에 가면 시합을 할 수 있었다. 요즘 동네엔 공터가 없다. 땅을 놀리는 것은 경제적으로 손해 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골목조차 사라졌다. 차들이 점령했기 때문이다. ‘골목대장’이란 말도 사라졌다.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공터는 동네의 문화가 생겨나는 곳이었다. 이제 동네의 문화는 사라졌다. 간혹 주민운동이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주민간 교류와 문화가 있지만, 이 역시 이벤트성이 강한 일회 행사인 경우가 많다. 자기가 사는 곳에 자신의 삶이 이루어 지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동네가 아이와 어른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이야기도 하고, 놀기도 하는 삶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일명 ‘동네의 부활’을 꿈꾸며.

 

※ 당시에도 대학야구는 별로 인기가 없어나 보다.

1981년 10월 20일에는 일기장에 <대학야구>라는 시(?)를 썼다.

  대학야구

관중없는 운동장에(서)
야구를 하니,
실감 없겠네.

그러나, 그러나
관중 몇 명이 있네. 

그것은 가을 바람
이겨라, 이겨라 소리치며
휘∼위 소리 내내.

Posted by 별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