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시험 성적은 엄마 실력이다?
학부모 사표를 내고 싶다는 아내.
 

오랜 만에 시간이 나서 초등학교 시절의 일기를 읽고 있었다. 역시 야구 시합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가끔 권투 이야기. 블로그에 쓸 소재를 찾으면서 읽고 있었는데, 아내가 막걸리 한잔 하자는 것이다.

아내가 어제 시부모님이 댁에 가서 김장을 하면서 막걸리를 샀는데 몇 병이 남아서 가져왔다는 것이다.(나는 대학생 대상 1박 2일 워크숍이 있어서 집을 비웠다.) 김치와 함께 한잔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내는 큰 아이 공부를 시키느라 지쳤다고 한다.
내일 초등학교 1학년인 큰 아들이 시험을 본다. 기말시험이다. 난 아직 어린 아이들이 시험을 본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안 들었고, 그냥 평소 하던 대로 시험을 보면 된다는 입장이었고, 아내는 그래도 시험이니 만큼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아이와 시험공부를 하던 방에서 큰 소리가 몇 차례 난 후 잠잠해 졌다.

난 아이에게 그렇게 부담을 줄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다.
자신은 다른 엄마에 비하면 ‘방종’에 가깝다고 한다. 그러면서 시험 때문에 가장 스트레스 받는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엄마들이라고 한다. 엄마들끼리 경쟁이 붙는다는 것이다. 엄마들이 하는 것만큼 아이들 시험 성적이 나온다는 것이다.

자신도 아이에게 공부에 대한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학부모 사표를 내다 싶다고 한다.  

아이들에게는 꿈을 심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너무 뒤떨어지면 아이도 힘들어 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신경만 쓰고, 신나게 놀고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자고 이야기 했다.

같은 동네에 사는 큰 아이 친구 어머니는 아이 숙제 도와는 주는 것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한다. 교육 당국자들은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이렇게 스트레스를 주면서 어떤 세상을 꿈꾸고 있는 것인지, 자신들은 아이들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지는 않은 지 묻고 싶다. 학부모들이 모두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부모의 경제력, 학력 수준에 따라 아이의 성적이 좌우되는 세상에서 진정한 ‘교육’의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아내는 미안한 마음이 있는지, 큰 아이를 꼭 껴안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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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추억의 일기장 >



1981년 11월 4일 수요일 날씨 맑음

오늘의 중요한 일 : 시험점수 부모님께 말하기 

오늘은 기분이 나빴다.

시험 때문이다.

다른 것들은 조금 그럴 듯 하게 받았는데, 산수가 65점이다. 국어가 85점, 자연이 90점, 사회가 85점이다.

저녁에 아버지와 어머니께 “엄마, 아빠. 저 시험 총점이 325점이예요.” 하고 말했다. 아버지께서는 “잘한다, 잘한다.” 하시며 꾸중해 주셨다. 기분이 몹시 안 좋다.

오늘의 반성 : 공부 열심히 하기

  * 초등학교 때, 꽤 공부를 잘 했는데 이때만 시험을 못 본 것 같다.^^&

Posted by 별뿌리

초등학교(당시 초등학교) 1학년(1978년)부터 대학교에 다닐 때까지 일기를 썼다. 매일 쓴 것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 때까지였지만. 아쉽게도 초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때까지 쓴 일기장을 잃어버렸다. 지금가지고 있는 일기장은 초등학교 4학년(1981년) 10월부터 쓴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항상 철없이 즐겁고 밝았던 시절이었던 것 같은데, 일기를 보니 많은 고민과 걱정을 했던 것 같다. 어제 하루종일 일기를 읽으며 추억에 잠겼다. 제일 많이 나오는 이야기는 야구와 축구, 공부(시험), 친구와 관련된 내용이다.

이제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추억을 ‘그때, 거기’에서 ‘지금, 여기’로 끌어내어 보고자 한다. 가능한 있는 그대로(선생님께서 맞춤법 틀린 부분 수정한 내용도) 옮기고자 한다.

 

                                  <초등학교 시절 쓰던 다양한 일기장들>

1981년 10월 12일 월요일 날씨 맑음

오늘의 중요한 일 : 시험지 하기
오늘의 착한 일 : 재운이 사과 줌 

요새는 공부에 너무 뒤떨어진다. 오늘 시험지 하는데, 모르는 게 너무 많아 시험지를 찌졌다.(찢었다.) 사회와 자연에서 모르는 게 아주 많았다. 내 머리가 녹이 쓴 것 아닐까? 그리고, 내일 그릴 그림연습을 했다.

요새 너무 빨리 잔다. 아∼ 나는 빨리 이 고비를 넘기면 좋겠다.

오늘의 반성 : 모르는 게 있으면 차근차근 배우겠다.
내일의 할 일 : 머리에 녹 쓴 것을 기름쳐서 열심히 공부하기

 

보관하고 있는 일기 중 가장 오랜 된 일기의 내용은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이다. 당시 지금과 같은 학원, 과외는 없었다. 그냥 학교 다녀와서 동네에서 놀다가 숙제나 공부를 하는 정도. 그래도 공부는 꽤 했던 것 같은데, 남들보다 뒤떨어 진 것 같다며 “머리에 기름”을 쳐서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매우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당시 친구들에 비해 나는 좀 민감한 편에 속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요즘 아이들은 어떨까? 사회적 분위기가 달라져서 강도 높은 학습과정은 일반적인 것으로 취급하지만, 자살을 생각하는 초등학생이 19.9%나 된다(2007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건강사회를 위한 보건교육연구회 공동조사)는 설문결과는 현재 교육 행태가 상당히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살로 내모는 공부는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다.  

“요새 너무 빨리 잔다”는 글을 보고, 잠자는 시각은 보았더니 ‘8시 50분’이다. 5학년, 6학년 시절의 일기장을 봐도 ‘너무 일찍 잔다’는 내용이 간간히 나온다. 우리 집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분위기였다. 현대인이 점차 ‘올빼미’형이 되어가듯이 아이들도 잠자는 시각이 점점 줄어든다. 세계 각국 학생들의 잠자는 시간을 비교한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 아이들의 취침시간은 평균보다 훨씬 적었다.

최근 학생들이 ‘잠잘 수 있는 권리’‘아침 밥 먹을 수 있는 권리’를 달라는 부르짖음은 괜한 투정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가, 특히 교육계가 아이들의 목소리에 좀더 신중하게 귀를 기울이기를 바란다.

Posted by 별뿌리

고미숙 선생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배꼽잡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유쾌한 글쓰기의 달인이라고 평가해도 손색이 없는 분이다. 흥사단 교육운동본부가 10월 31일, 고미숙 선생을 모시고 <호모 쿵푸스>를 주제로 ‘저자초청 독서토론회’를 개최했다. 꼭 가고 싶었으나, 갑자기 사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해 아쉬움이 무척 컸다. 그래서 주말을 이용해 ‘공부의 달인’에 접속해 보았다.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대략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책을 읽어라. 특히 고전을. 암송하고 구술하라. 앎과 몸과 삶이 하나가 될 것이다. 천하를 품고 책을 읽을 때 지혜와 비전이 가능하다. 그리고 배움을 얻을 스승과 함께 공부할 동료를 찾아라. 즉 앎의 코뮌을 조직하라. 항상 의심하고 토론하라. 이는 온 몸으로 공부하는 것이니, 이 과정을 넘어설 때 자유의 공간이 열릴 것이다.  

청소년 대상이건 성인 대상이건 간에 포럼, 강연, 토론회 등을 진행할 때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질의․응답 시간이다. 질문이 없어 썰렁할까, 너무 엉뚱한 질문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 억지로 질문을 유도하기도 하고, 정 안되면 진행을 하는 내 자신이 질문을 하기도 한다. 왜 질문하는 것이 이렇게 낯설고, 어려울까.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원인을 진단한다. 

토론이건 체험학습이건 그것이 강도 높은 학습의 과정이 되려면 고도의 훈련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리고 토론을 통해 자기 생각을 바꾸겠다는 치열한 의지도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아주 유치한 수준에서 헛바퀴만 돌 다름이다. 대학에서는 이런 문제가 이미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학생들의 자율에 맡긴 토론 수업들은 백발백중 실패한다. 일단 지금 대학생들은 삶과 사회에 대한 물음이 없다. “공부하는 하는 사람이 의심할 줄 모르는 것은 크나큰 병통이다. 오직 의심해야만 자주 분석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의심을 깨뜨리면 이것이 바로 깨달음인 것”(이탁오, 『분서』)이라 했다. 그런데 바로 이 의심없는 학생끼리 백날 토론을 해본들 ‘그 나물에 그 밥’, ‘다람쥐 쳇바퀴’일 뿐이다. 교수와 학생 간의 신뢰가 생기지도 않을뿐더러, 수업의 생동감도 완전히 땅에 떨어지고 만다.(p.69) 

그렇다.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 교육이 주로 내용을 외우고, 정해진 답을 찾는데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 의심을 품거나, 다르게 생각하는 바를 표현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에 나와서도 지배담론을 쫓아 따라가기에 바쁘다. 그래서 저자는 이러한 근대 학교 교육의 문턱을 넘어야 진정한 자유의 공간에 들어 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추상적인 자유란 없다. 다만 지금 나의 자유를 가로막고 있는 문턱이 있을 뿐. 그 문턱을 넘어설 때 비로소 그 만큼의 자유의 공간이 열리는 법이다.(p.68) 

학교 교육은 좋은 대학에 가고, 돈을 많이 벌거나 권력을 획득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장이 되었다. 사고의 폭은 좁아지고, 삶과 배움은 별개의 분리된 공간에 놓이게 되었다. 학교(학원 포함) 이외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배움은 취미나 자신의 미래와 무관한 영역으로 취급된다. 그러하기에 교사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자로 전락하고, 우리 사회에 진정한 스승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 사라지게 되었다. 

삶의 지혜와 문명의 비전은 천하의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다. 아니, 천하를 가슴에 품고 나아갈 때라야 그런 지혜와 비전이 가능하다. 배움이란 무릇 이런 것이다. … 학교는 공부를 독점함으로써 전 사회를 학교화하고 말았다. 자격증과 학벌, 국경 등 온갖 차별을 뼈와 살에 사무치게 만들어버리는 불모적 공부법! 그런 공부를 전복해 버리면 천하를 다 배움터가 된다. … 스승이란 무엇인가? 가장 열심히 배우는 이다. 배움을 가르치는 이, 배움의 열정을 촉발하고 전염시키는 배움의 헤르메스, 그가 곧 스승이다.(p.181)

 

바로 눈앞의 자기 이익만 생각하고, 자신의 성취 이외에는 관심도 없는 세대에 이렇게 충고한다. 그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고. 진정 자신의 삶이 의미있게 하는 공부를 하려면 주변을 둘러보라고. 

“무릇 어진 이란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세워주고, 자기가 성취하고자 하면 남을 성취하게 해 준다.”(『논어』,「옹야」편) 나이, 학벌, 성별을 넘어 어디서건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고, 언제 어디서건 ‘앎의 코뮌’(앎을 공유하는 네트워크)을 조직할 수 있는 능력.… 도인의 경지란 이런 것이 아닐까.(p.214) 

본 저서를 통해 출구를 찾기 어려운 미로를 유쾌하게 빠져 나오는 경험을 했다. 정말 오랜 시간동안 감춰진 비법(秘法)을 유쾌하고 쉽게 잘 배운 것 같다.
하지만 몇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저자는 근대적 학교 교육 전반을 비판했지만,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학교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다. 그런 점에서 현재 학교 시스템 내에서 ‘공부의 달인’이 되는 노하우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면 지치고 힘들어 하는 청소년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저자가 제시한 비법(秘法)은 입시와 취업의 높은 벽을 넘기에는 추상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 턱 너머에서, 이쪽 세상은 좋으니 오라고 손짓하기 보다는 함께 손잡고 문턱을 넘으려고 할 때 더 설득력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특정 인물과 책을 과도하게 인용하고 의존한 것과 공부의 비법을 만병통치약처럼 다룬 것이 문턱을 넘어설 용기를 주는데 미흡하지 않았나 싶다. 많은 독자들은 그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문턱 너머를 쳐다만 보지 않을까?

Posted by 별뿌리
1. 생일날. 업무가 끝나지 않아 저녁 8시가 되어서도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핸드폰 진동이 울려 받아보니 큰 아들이다. 아빠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으니, 무조건 빨리 들어오란다. 하도 간절하게 이야기해서 짐을 싸들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오니 케이크가 눈에 띤다. 설명을 들어본 즉, 초등학교 1학년인 큰 아들이 용돈을 모아 케이크를 샀다고 한다. 고르는 것은 5살 둘째가 했단다. 촛불을 켜고 생일 축하 노래를 들으니 가슴이 뭉클했다. 아이들이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도 들고, 아이들이 바라는 부모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자문해 보게 되었다.


2. 일을 마치고 집에 오니, 큰 아들이 반기면서 종이 묶음을 내민다. 일명 “효도카드”란다. 방청소, 설거지, 신발장 청소, 안마, 화분에 물주기, 빨래 널기, 이불정리하기 등이 종이에 쓰여 있다. 필요한 일이 있으면 해당되는 종이를 한 장 자기에게 주라고 한다. 언제고 그 일을 하겠다고 한다. 벌써 ‘동생 돌봐주기’ 카드를 엄마가 주어서 열심히 동생을 돌봐 주고 있단다. 자기가 만들어 놓고선, 벌써 1장을 모았다고 좋아한다. 뿌듯하기도 하면서, 왠지 나는 아이들에게 줄 카드가 별로 없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부모가 만족하는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행복해 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어느 교육자의 말처럼,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는 부모가 아니라 아이들이 바라는 것을 잘 이해하고 함께 해 주는 친구가 되겠다고 다짐해 본다.

Posted by 별뿌리
1. 생일날. 업무가 끝나지 않아 저녁 8시가 되어서도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핸드폰 진동이 울려 받아보니 큰 아들이다. 아빠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으니, 무조건 빨리 들어오란다. 하도 간절하게 이야기해서 짐을 싸들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오니 케이크가 눈에 띤다. 설명을 들어본 즉, 초등학교 1학년인 큰 아들이 용돈을 모아 케이크를 샀다고 한다. 고르는 것은 5살 둘째가 했단다. 촛불을 켜고 생일 축하 노래를 들으니 가슴이 뭉클했다. 아이들이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도 들고, 아이들이 바라는 부모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자문해 보게 되었다.


2. 일을 마치고 집에 오니, 큰 아들이 반기면서 종이 묶음을 내민다. 일명 “효도카드”란다. 방청소, 설거지, 신발장 청소, 안마, 화분에 물주기, 빨래 널기, 이불정리하기 등이 종이에 쓰여 있다. 필요한 일이 있으면 해당되는 종이를 한 장 자기에게 주라고 한다. 언제고 그 일을 하겠다고 한다. 벌써 ‘동생 돌봐주기’ 카드를 엄마가 주어서 열심히 동생을 돌봐 주고 있단다. 자기가 만들고, 벌써 1장을 모았다고 좋아한다. 뿌듯하기도 하면서, 왠지 나는 아이들에게 줄 카드가 별로 없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부모가 만족하는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행복해 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어느 교육자의 말처럼,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는 부모가 아니라 아이들이 바라는 것을 잘 이해하고 함께 해 주는 친구가 되겠다고 다짐해 본다.

Posted by 별뿌리

 너를 놀이방에 보낸 첫날
(2002년 7월 15일 오전 10시 20분)

 

태웅이는 지금쯤 놀이방에서 열심히 놀고 있겠지? 혹시 울고 있는 것을 아닐까?

때때로 짜증을 내며 울곤 하지만, 항상 밝게 웃고 재미있게 노는 태웅이는 놀이방에서도 잘 지내리라 생각한다.

작년 6월달 이후로 태웅이는 외할머니께서 보살펴 주셨어. 외할머니의 따스한 보살핌으로 태웅이는 무럭무럭, 씩씩하게 잘 자라주었어. 그렇게 보낸 지가 벌써 1년이 지났어. 한 10일전에 태웅이는 서울 생활을 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오늘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거야. 인생을 살면서 기록할 만한 날이라 생각되어 아빠가 대신 몇자 적는다.

 

오늘 아빠는 아침 6시 30분경에 태웅이가 장난치는 소리에 깨어났어. 태웅이는 벌써 엄마랑 아침 밥을 먹고 나서, 놀이방을 가는 날이라는 것을 아는 듯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놀고 있었다. 아빠가 씻고 아침 밥을 먹는 동안 엄마는 태웅이를 목욕을 시켜주었어. 깨끗하고 깔끔한 태웅이의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엄마는 출근시간이 늦도록 태웅이를 씻기고 예쁜 옷을 입히고 하느라 정신이 없으셨어. 엄마가 7시 30분경에 출근을 하자 태웅이는 엄마랑 떨어지는 것이 싫어서인지 엄마를 따라 나가겠다고 자꾸만 신발을 가리키며 밖으로 나가자고 아빠에게 우는 소리로 부탁을 하는 듯 했어. 하지만 아빠는 태웅이가 놀이방 갈 준비를 빨리 해야 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고. 이때부터 태웅이는 계속 보채기 시작했어. 태웅이는 계속 아빠를 졸졸졸 쫓아다니며 억지로(?) 슬픈 표정을 지으며 계속 보챘고. 한동안 이렇게 아빠랑 실랑이를 벌이다가 8시 15분이 되어서 집을 나서게 되었지. 태웅이가 먹을 우유, 빵, 치즈, 물, 우유병, 컵을 챙기고, 갈아입을 옷, 손수건을 쇼핑백에다 넣은 다음, 양말을 신겼지. 양말을 신긴 다음부터는 태웅이의 표정이 밝아지더라. 신발을 신고 나서는 태웅의 특유의 웃음소리-키득키득-를 내며 신나 하는 거야. 집 밖으로 나가서 몇 미터 걷더니 안아달라고 해서, 한 손에는 쇼핑백을 한 손에는 태웅이를 안고 걷기 시작했어. 이상하게 다른 사람이랑 다닐 때는 잘 걸어 다니면서 아빠랑 다닐 때는 왜 자꾸 안아달라고 하지는 모르겠어. 왜 그러는 것일까?

집에서 놀이방까지는 걸어서 2-3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놀이방이 있는 건물 1층에 있는 가게에 가서 태웅이 귀저기를 사고 2층에 있는 놀이방으로 갔어. 문을 열고 놀이방으로 들어가니 태웅이보다 1살 정도 많은 아이가 달려나와 호기심 어린 눈으로 태웅이를 쳐다보더라. 그 녀석이 태웅이게게 잘 해 주기를 속으로 부탁하면서 태웅이 신발을 벗기고 방으로 들어갔어. 그때 원장 선생님이 나오셔서 ‘야, 우리 태웅이 일찍 왔네’ 하시면서 태웅을 안아 주시더라. 처음에 태웅이는 아빠를 쳐다보면 아빠에게 오려는 듯 손을 내밀어 뭐라고 이야기를 했어. 선생님이 태웅이를 내려놓자 아빠에게 착 달아 붙더군. 선생님에게 태웅이가 심하게 울거나 보채면 연락하라고 이야기를 하고, 아빠는 태웅이 눈치를 보면서 바닥에 계속 앉아 있는 척을 했어. 선생님이 놀이기구가 있는 방으로 태웅이를 안고 가자 태웅이는 좋아서 발을 동동 구르며 키득키득 기렸지. 이때 아빠는 놀이방으로 나와 집으로 왔어.

집에 와서 집안 정리하고 차 한잔 마시고, 태웅이가 잘 놀고 있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엄마, 할머니한테서 전화가 왔어. 태웅이 놀이방에 잘 갔느냐고. 엄마가 놀이방 선생님께 전화를 하고 다시 아빠에게 전화를 해서, 태웅이가 잘 놀고 있다고 말해 주었어. 아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외할아버지께 이 소식을 전화를 알려 주었어.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태웅이를 사랑하고 걱정하고 잘 되기를 바라고 있어.

이러한 좋은 환경 속에서 태웅이가 씩씩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는 바란다.

 

이 부분은 태웅이가 고등학교를 갈 정도 나이가 되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개체발생은 개통발생을 반복한다는 말이 있어. 즉 사람의 경우, 인류가 처음 생겨나서 지금까지 진화해 오는 과정(개통발생)을 한 인간이 태어나서 그대로 재현(개체발생)한다는 것이지. 인류가 처음 생겨났을 때의 모습은 한 인간이 태어났을 때의 모습과 같고, 인류가 기어 다니다가 걸어 다니기 시작하고(호모 에렉투스), 도구를 사용하면서 생각을 발전 시켜나가는(호모 사피엔스) 과정은 한 인간이 태어나서 어른이 되는 과정과 유사하다는 것이야. 인류는 짧은 시간에 엄청난 변화(일반적으로 발전이라는 말로 표현되는)를 겪어 왔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역사의 발전, 승리인 듯 이야기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인간은 자신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바쁘게 어디론가 향해 경쟁을 하며 달려가게 되었지. 인간성을 상실함과 동시에 각종 차별, 소외가 생겨나고 특히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지구 환경은 물론, 인간 자신의 생명까지 위협하게 되는 상황을 만들게 되었어. 그래도 사람들은 지금까지 변화해온 속도보다 더 빨리 변화하기 위해 어디론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어. 갓 태어난 아기는 한 가정에서 오랫동안 인류가 원시생활을 해오던 것처럼 가정(1차 집단)이라는 이해관계가 없는 울타리에서 조건 없는 사랑을 받으며 자라야 하는데, 현대인들은 빨리 빨리 달려가기 위해 어린 아이를 사회기관(놀이방, 유아원, 유치원)으로 보내지. 물론 집에서 지내는 것보다 체계적으로 많은 것을 배우며 사회(2차집단)에 적응을 하게 되는 장점은 있겠지. 하지만 조건이 허락된다면 아빠는 오랜 기간의 원시생활처럼 태웅이도 사회체제에 편입되지 않고 태웅이 만의, 또는 우리 가족만의 테두리에서 서로의 사랑을 만들어가고, 개성을 형성해나가는 시간을 오랫동안 가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어. 하지만 아빠와 엄마도 사회에서 생활을 하는 사람이고,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이 우리에게도 크게 예외인 것은 아니어서 태웅이도 놀이방에 가게 된 거야.

 

야∼ 태웅이가 놀이방에 가는 것 가지고 너무 심각하게 글을 쓴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어쩌면 집에서 아빠랑 엄마랑 있는 것보다 놀이방에 가서 비슷한 또래들이랑 노는 것을 태웅이가 더 좋아 할 수도, 태웅이 에게 더 많은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우리는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야 할 운명을 타고 태어났으니까 항상 재미있게 생각하고 살아가자꾸나. 아빠랑 엄마는 집에서 태웅이랑 보내는 시간에 더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할께.

오늘 첫날이라서 아빠가 2시 정도에 데리러 갈 거야.(적응이 되면 오후 7시 30분까지 놀이방에서 놀아도 돼) 그때까지 너의 첫 사회생활을 마음껏 즐기고 있으려무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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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오후 1시 30분) 놀이방 선생님이 집으로 전화를 하셨다. 태웅이가 형아들(놀이방에서 태웅이가 가장 어리다)을 쫓아다니며 신나고 놀았으며, 밥도 잘먹고 우유도 잘먹고, 지금은 막 잠이 들었다고 한다. 너의 모습이 눈에 선하구나. 지금은 무슨 꿈을 꾸며 자고 있을까. 정말 다행이다. 우리 태웅이는 너무너무 좋은 아이야. 엄마도 할머니도 이 소식을 듣고 태웅이가 너무 대견하다며 좋아하셨어. 태웅이는 우리 가족에게 기쁨을 주는 아이야. 너무 고맙다. 태웅이가 잠에서 깨면 선생님이 연락을 준다고 했어. 조금 있다가 만나자꾸나.

Posted by 별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