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사단 미래사회 리더스쿨의 강연도 이제 중반에 접어들었다. 열 번의 강연 중 다섯 번째였던 이번 강연은 고병헌 성공회대학교 교수와 함께 진행되었다. 학생들이 흥사단 강당 앞에 모이기도 전에 미리 와서 기다리며 준비하던 고병헌 교수는 일찍 온 학생들과 대화도 나누고 저녁식사도 하는 등 학생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번 강연에서는, 미래사회 리더스쿨에 참가하면서 변화한 자신의 모습, 그리고 앞으로 변화해 나갈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잘 정리된 파워포인트로 진행될 줄 알았던 강연은 예상과 달리 강연 전에 만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느낀 점을 바탕으로 진행되었다. 강연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구절로 시작되었다. 고 교수는 자유롭다는 것은 자기 이유를 갖는다는 것이며, 원칙이 없는 세상에서 원칙 있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무리 안에 있을 때의 아늑함에서 벗어나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진리의 길이며 자유롭게 사는 길인 것이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학습 해야 될 이유나 동기가 자기로부터 나와야 한다. 진리 추구의 전당이라 불리는 대학에 있는 학생들이 추구해야 할 진리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이었다.

'생각이 없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는데,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이 생각이 없으면 주변 사람과 사회가 힘들지만 돈과 권력이 없는 사람이 생각이 없으면 기껏해야 자신을 고통스럽게 할 뿐이라고 하였다. 존재 자체로도 '리더’인 대학생들이 생각이 없으면 사회가 힘들어지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생각 있는 대학생’이 되길 당부했다. 생각이 있는 사람은 더불어 사는 사람이 될 줄 알아야 하는데, 우리가 더불어 살아야 할 대상에는 자기 자신은 물론 자연, 다른 사람, 다른 생명체도 포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의 대학 문화는 더불어 사는 삶과는 멀어져 있다. 대학에 온 학생들을 어떻게 잘 길러낼까를 고민하기보다는 얼마나 좋은 학생을 효율적으로 선발하는가에 혈안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경쟁이 아닌 선발 경쟁을 우선시하는 한국의 대학 문화는 대학뿐 아니라 중등 교육까지 흔들리게 하고 있다. 오로지 경쟁에서 이겨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곳에서 진정한 학문의 길은 물론 행복한 일상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학문이라는 것은 익숙해져 있는 것을 뒤집고 내 몸을 가지고, 삶의 가치를 가지고 세상을 해석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한 나의 삶의 가치와 다른 사람의 삶의 가치가 만나는 것 그 자체로도 세상은 변화할 수 있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치와 다를 수 없으며, 사람은 비교당할 수 없는 저마다의 고유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 안에서 경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로부터 나온 이유를 가지고 '나의 삶'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나의 미래를 성찰하는 것과 동시에 우리 사회의 미래를 성찰할 수 있는 힘을 가져다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흥사단미래사회리더스쿨 손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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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
- 신자유주의 현실체제에 대한 분석과 대안 모색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에서 주로 신자유의주의 폐해와 분단체제의 모순을 분석했

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이하 새사연)은 그 후속 작업 성격의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이라는 책에서 좀더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았다. 실상 신자유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는 앞의 책과 유사한 측면이 있으나, 대안으로써 기존의 운동세력이 지능 노동자, 농민, 대학생, 자영업인 등과 연대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제시했다는 점에서는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책의 저자들은 87년 체제가 97년 외환위기 이후 껍데기만 남아 있다고 진단하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일차적 과제는 ‘87년 체제의 질적 발전’이 아니라 ‘97년 체제의 혁파’에 있다”고 강조한다. 많은 정치, 사회학자들이 탄핵반대 국면이나 촛불정국을 87년 체제의 종언이라고 평가하는 것과 사뭇 상이하다. 87년 체제가 형식적 민주주의의 달성하였으나, 97년 외환위기로 경제민주주의가 침식당했으며 이 경제체제가 정치영역까지 잠식했기 때문에 탄핵이나 촛불 정국에서 87년 체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논지이다.

저자들은 87년 당시의 계급구성은 97년 외환위기 이후 큰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이 기초 위에서 새로운 운동의 동력과 주체를 고민해야 한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21세기 사회운동은 기존의 비판적인 저항주체 못지않게 “전망과 대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 창의적인 지혜를 모으는 대안적 주체들”의 강한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새사연은 첨예하게 분화된 현실 사회를 인식해서인지 “획일적 연대는 어려워 졌지만 폭넓은 연대가 불가능해진 것은 아니다”라고 진단한다. 그래서 저자들은 다양한 대안 주체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을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그 속에 공통적으로 신자유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주도면밀하게 분석한다. 그리고 나서 이 거대한 신자유주의 ‘골리앗’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흩어져 있는 ‘다윗’들의 연대뿐이라는 프로세스로 논리를 전개하다.

 

‘제1장 근본부터 달라진 한국경제’에서는 우리 경제의 주인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외국 금융주주자본으로 재편되었고, 그 하위에 재벌 그룹과 은행, 민영화된 기관이 포진하게 되었다고 분석한다. 이에 저자는 “시장주의적 산업정책과 국가주의적 산업정책을 넘어서 대다수 경제 주체가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노동주동형 산업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한다. 즉 경제민주화가 진척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분석과 대안의 방향은 올바르다고 생각하지만 선언적 주장에 가깝다.

‘제2장 지식기반 경제와 노동의 진화’에서는 지식기반 경제가 신자유의주의 초과이윤을 올릴 새로운 무기로 등장했으며, 모든 학문적 지식이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면서 사실상 경제 전 영역이 지식기반 경제 영역으로 편입되었다고 분석한다. 이에 저자는 창조적 지능 노동자가 경제권력을 가져야 우리 경제에 미래가 있다고 전망하면서, “노동자의 경영 참여는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고 제시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를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는가이다. 자본은 소수의 ‘만들어진’ 지식인을 고용하고, 다른 노동자들과는 다른 대우(지위, 급여 등)를 하며 철저하게 차별화 정책을 구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제3장 대안실현의 중심 주체, 한국의 노동자’에서 기존 운동세력이 이들도 착취를 당하는 노동자임을 각인시키고 연대에 참여시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한 것은 논리적으로는 올바르다. 문제는 ‘소위 첨단산업 시대의 꽃으로 불리는 IT, 금융산업 종사자도 계급적으로 노동자’이기에 자본의 논리에 대항해 연대를 하면 새로운 대안을 형성하겠지만, 자본과 노동의 괴리만큼이나 이들과 육체 노동자의 괴리도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는 노동자가 반신자유주의 지향성을 분명히 하고, 총노동의 단결을 추진하며, 경제분야를 넘어선 정치 운동 참여와 산별노조 건설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이에 앞서 기존 운동 방식에 대한 성찰적 반성과 내부 토대 강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저자들은 ‘개방 농정과 신자유주의의 폭정’으로 거의 해체되어 버린 농촌의 복원을 위해 농민은 국민농업(환경 친화적 농업, 전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 공동체 형성 등)으로 전환하고 광범위하고 대중적 연대의 토대를 만들어야 함을 강조한다.(‘제4장 농민운동의 새로운 과제와 국민농업’) 또한 저항과 진보의 상징이었던 대학이 교육 시장의 단순한 소비자로 전락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대학생은 대중성을 바탕으로 대중조직을 건설하고 반신자유주의 공동전선에 참여해야 한다고 제시한다.(‘제5장 신자유주의 시대에 대학생으로 산다는 것’) 나아가 연대의 사각지대로 여겨졌던 자영업인들도 업종을 넘어 새로운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도시연대의 주요한 주축이 되어 대안경제의 주체, 지역운동의 주체로 나서는 것이 절실하다고 역설한다.(‘제6장 자영업인의 사회적 위치 변화와 그 역할’)

결론적으로 새사연 연구자들은 전 지구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 특히 주주자본주의 사회가 된 우리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대안주체들이 대중화 전략을 세우고 연대하여, 절대 다수 국민을 운동의 주체로 참여시켜야 한다고 제안한다.

 

전반적으로 저자들은 구체적 대안을 제시했다기보다는 ‘대안 세력’들에게 새로운 역할을 찾아 연대를 해야만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열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일부 인용한 통계 수치들에 혼선이 있기도 하다. 민주노총의 사례를 대학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거나, 비관적 현실에서 아주 작은 희망의 씨앗을 찾아내어 너무 큰 기대를 거는 논리적 비약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들이 제시한 현실 분석 및 대안 방향은 분명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임에 틀림없다. 이 당위적 대안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정밀한 방안(다양한 이해가 상충되는 총노동의 연대에 대한 접근 등) 마련과 적극적 참여가 필요할 터 인데, 이는 새로운 사회를 바라는 모든 이들이 함께 풀어 나가야 할 숙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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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 정부는 여전히 모르쇠다. 오마바 정권이 들어서면 북미관계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한반도에서 우리는 어떤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까? 미래를 예측하고 방향을 설정하기에 앞서, 지난 과정의 성과와 한계를 면밀히 분석해 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가 11월 17일 오후1시, 세종호텔에서 개최하는 심포지엄은 많은 시사점을 주리라 기대된다.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심포지엄 - 대북 포용정책 10년의 평가와 과제

지난 10년간 한국정부의 대북 포용정책 추진 결과 남북 정상회담과 국방장관회담이 두 차례 개최되었고, 개성지역에서 작은 경제공동체가 형성되고 있으며, 과거에는 생각조차 어려웠던 국군포로와 납북자 가족 상봉이 이루어지는 등 남북한 관계에 괄목할 만한 발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의 대북 지원이 ‘퍼주기’ 논란을 유발하는 등 대북정책 추진과정에서 여러 문제점들도 표출되었습니다.

  이에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는 지난 10년간의 대북 포용정책 성과와 한계에 대해 균형 있는 평가를 내리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많이 바쁘시더라도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가 제95차 특별 통일포럼으로 개최하는 ‘대북 포용정책 10년의 평가와 과제’ 주제의 심포지엄에 참석하시어 자리를 빛내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2008년 10월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상임대표  박원철  
                                                                     정책위원장  정성장 

일시 : 2008년 11월 17일(월) 오후 1시 ~ 6시 
장소 : 세종호텔 4층 해금강홀 (4호선 명동역 10번 출구)

[일 정]            * 진행사회 :  문성근(흥사단 정책실장)
13:00 ~ 13:20    등록
13:20 ~ 13:30    인사말씀 (박원철 상임대표)
13:30 ~ 13:40    축사 (홍양호 통일부차관)

13:40 ~ 15:40   제 1분과           * 사회 :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
- 주제 : 남북한 정치군사 대화와 경제협력

▶ 소주제1 : 대북정책 기조와 남북 당국간 협의의 제도화
         *발표: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
         *토론: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소주제2 : 남북한 군사 대화와 협력
         *발표: 서주석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토론: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신안보연구실장)

▶ 소주제3 : 남북경협의 확대와 경제공동체 형성
         *발표: 홍익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
         *토론: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15:40 ~ 16:00     휴식

16:00 ~ 18:00   제 2분과            *사회: 이서행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 주제: 남북한 사회문화협력과 인도적 문제

▶ 소주제1 : 남북 사회문화교류
             *발표: 전영선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연구위원)
             *토론: 김성수 (성균관대 교수)

▶ 소주제2 : 대북 인도적 지원
            *발표: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토론: 이종무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평화나눔센터 소장)

▶ 소주제3 : 이산가족상봉과 납북자*국군포로 문제
             *발표: 임순희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토론: 서보혁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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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조차 교육이 되어 버린 현실과 삶터가 아닌 동네

1981년 10월 16일, 보이스카우트에서 축구를 해서 1-0으로 이겼다.

10월 19일에는 4학년 4반과 야구시합을 해서 4-0으로 이겼다. 이때까지 우리 반(11반) 야구 성적은 18전 14승 2무 2패였다. 그리고 나의 타격 순위는 반에서 2위였다.(“우리 반 타격 1위는 현철이고, 2위는 재운이와 나다.”) 이 날 일기장 ‘내일의 할 일’에는 “발야구나 축구해서 이기기”라고 썼다.

10월 21일에는 8반과 야구시합을 하여 12-0으로 이겼다. 기권승이다. 이 날 나는 4타석 3안타, 1포볼로 꽤 좋은 성적이었다. ‘내일의 할 일’에는 “야구 이겼다고 자랑하기”라고 썼다. 이 날 승리로 우리 반 야구 성적은 19전 15승 2무 2패가 되었다.


당시에는 야구와 축구를 거의 매일하다시피 한 것 같다. 야구와 축구는 단체시합이다. 약식으로 시합을 하더라도 양 팀 합하여 20명가량은 있어야 한다. 시합이 성사되면 그 날 20여명의 아이들이 모여서 시합을 한다. 옆에서는 다른 팀 시합이 이루어지곤 하였다. 그만큼 자유롭게 뛰어 노는 아이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 신나고 재밌어서 하는 것이다. 요즈음은 노는 것도 과외를 받는 다고 한다. 운동하는 것도 선생을 모셔서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때론 싸우기도 했지만 옳고 그름을 함께 판단했다. 그러나 이제는 정해진 커리큘럼과 규칙에 따라 하고, 판단도 누군가가 대신 해준다. '놀이자체가 생활이던 시절'을 떠나 '놀이조차 교육이 되어버린 시절'에 살고 있다.

또한 아이들이 언제고 놀 수 있는 공터가 있었다. 시합이 생기면, 공만 가지고 주변 공터에 가면 시합을 할 수 있었다. 요즘 동네엔 공터가 없다. 땅을 놀리는 것은 경제적으로 손해 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골목조차 사라졌다. 차들이 점령했기 때문이다. ‘골목대장’이란 말도 사라졌다.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공터는 동네의 문화가 생겨나는 곳이었다. 이제 동네의 문화는 사라졌다. 간혹 주민운동이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주민간 교류와 문화가 있지만, 이 역시 이벤트성이 강한 일회 행사인 경우가 많다. 자기가 사는 곳에 자신의 삶이 이루어 지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동네가 아이와 어른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이야기도 하고, 놀기도 하는 삶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일명 ‘동네의 부활’을 꿈꾸며.

 

※ 당시에도 대학야구는 별로 인기가 없어나 보다.

1981년 10월 20일에는 일기장에 <대학야구>라는 시(?)를 썼다.

  대학야구

관중없는 운동장에(서)
야구를 하니,
실감 없겠네.

그러나, 그러나
관중 몇 명이 있네. 

그것은 가을 바람
이겨라, 이겨라 소리치며
휘∼위 소리 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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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당시 초등학교) 1학년(1978년)부터 대학교에 다닐 때까지 일기를 썼다. 매일 쓴 것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 때까지였지만. 아쉽게도 초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때까지 쓴 일기장을 잃어버렸다. 지금가지고 있는 일기장은 초등학교 4학년(1981년) 10월부터 쓴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항상 철없이 즐겁고 밝았던 시절이었던 것 같은데, 일기를 보니 많은 고민과 걱정을 했던 것 같다. 어제 하루종일 일기를 읽으며 추억에 잠겼다. 제일 많이 나오는 이야기는 야구와 축구, 공부(시험), 친구와 관련된 내용이다.

이제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추억을 ‘그때, 거기’에서 ‘지금, 여기’로 끌어내어 보고자 한다. 가능한 있는 그대로(선생님께서 맞춤법 틀린 부분 수정한 내용도) 옮기고자 한다.

 

                                  <초등학교 시절 쓰던 다양한 일기장들>

1981년 10월 12일 월요일 날씨 맑음

오늘의 중요한 일 : 시험지 하기
오늘의 착한 일 : 재운이 사과 줌 

요새는 공부에 너무 뒤떨어진다. 오늘 시험지 하는데, 모르는 게 너무 많아 시험지를 찌졌다.(찢었다.) 사회와 자연에서 모르는 게 아주 많았다. 내 머리가 녹이 쓴 것 아닐까? 그리고, 내일 그릴 그림연습을 했다.

요새 너무 빨리 잔다. 아∼ 나는 빨리 이 고비를 넘기면 좋겠다.

오늘의 반성 : 모르는 게 있으면 차근차근 배우겠다.
내일의 할 일 : 머리에 녹 쓴 것을 기름쳐서 열심히 공부하기

 

보관하고 있는 일기 중 가장 오랜 된 일기의 내용은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이다. 당시 지금과 같은 학원, 과외는 없었다. 그냥 학교 다녀와서 동네에서 놀다가 숙제나 공부를 하는 정도. 그래도 공부는 꽤 했던 것 같은데, 남들보다 뒤떨어 진 것 같다며 “머리에 기름”을 쳐서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매우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당시 친구들에 비해 나는 좀 민감한 편에 속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요즘 아이들은 어떨까? 사회적 분위기가 달라져서 강도 높은 학습과정은 일반적인 것으로 취급하지만, 자살을 생각하는 초등학생이 19.9%나 된다(2007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건강사회를 위한 보건교육연구회 공동조사)는 설문결과는 현재 교육 행태가 상당히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살로 내모는 공부는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다.  

“요새 너무 빨리 잔다”는 글을 보고, 잠자는 시각은 보았더니 ‘8시 50분’이다. 5학년, 6학년 시절의 일기장을 봐도 ‘너무 일찍 잔다’는 내용이 간간히 나온다. 우리 집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분위기였다. 현대인이 점차 ‘올빼미’형이 되어가듯이 아이들도 잠자는 시각이 점점 줄어든다. 세계 각국 학생들의 잠자는 시간을 비교한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 아이들의 취침시간은 평균보다 훨씬 적었다.

최근 학생들이 ‘잠잘 수 있는 권리’‘아침 밥 먹을 수 있는 권리’를 달라는 부르짖음은 괜한 투정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가, 특히 교육계가 아이들의 목소리에 좀더 신중하게 귀를 기울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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